남의 쌈짓돈으로 선심을?
남의 쌈짓돈으로 선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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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총선 밑에 정치권의 인심이 그 어느 때보다 후해졌다. 양극화가 심해진 사회에서 상대적 약자들에 대한 이런저런 배려는 눈물 나게 고맙다.

어느 선거 때라고 이런 식의 선심이 없기야 했을까마는 경기 침체로 축 처진 민심을 다독이며 선거에 나서자니 더욱 부산한 행보가 눈길을 끌 뿐이다.

총선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비아냥댈 형편은 물론 아니다. 전주에서 시작된 지방의회들의 대형 유통업체 기세 꺾기는 꼭 총선 아니어도 시작될 일이었을 테지만 하필 선거철이어서 파장이 전국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또 무관하다고만 볼 수도 없는 일이다.

일단 표가 있는 곳을 향한 선심 공세에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한마음으로 선심성 법 잔치가 벌어진다. 특히 국회 정무위가 ‘부실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의결하랴, ‘여신금융업법 개정안’ 다듬으랴, 이래저래 유독 바쁘다.

위원회 내에 법안심사소위를 둔 정무위가 모처럼 부지런한 것은 긍정적으로 봐줄만 하다. 다만 진작 필요한 시기에는 손 놓고 있다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 서둘러 ‘서민 챙기기’에 나서는 모습은 일단 볼썽사납다.

게다가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은 금융업의 생명인 ‘신뢰’에 금이 가게 하는 끔찍한 정치행위다. 만약의 경우에 원금 보장한도는 5천만 원이라는 걸 모르는 국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법 규정을 만들어야 했을 때 우리는 저축도 투자와 마찬가지로 금융소비자의 ‘자기 책임’이라는 것을 학습했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마지못해 수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후로 십수년이 흐르는 동안 사회적 동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다.

정부가 부실 저축은행의 문제점을 쉬쉬하고 덮어둔채 방치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영업정지를 시켜 예금자들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되면 예금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라도 낼 일이다.

특별법을 만들어 특정한 사건 피해자들에 대해서만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앞으로 발생할 유사한 사건에 전례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 또 이제까지 그 한도 때문에 조심스럽게 금융사들의 신용을 살펴보고 예금의 안전성을 따져가며 저축해온 다수 국민들에게도 배신감을 안겨주는 문제가 있다.

만약 부실 금융기관 피해자에 대해 보장된 5천만원 한도가 그간의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해볼 때 너무 적다고 판단된다면 그건 모든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보장 한도를 높여주는 쪽으로 바꿔나갈 일이다. 특정인들에게 특혜를 주고 끝내자는 식으로 해결할 일은 아니다.

물론 저축은행 이용자들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런 약자들의 돈을 그러모으고 영업정지를 당한 금융기관 문제는 피해자들 사정으로 보아서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데 문제는 5천만원 초과 예금자 보호 수준을 넘어 후순위채권자까지 혜택을 주자고 한다.

그렇게 합치니 18개 저축은행에 8만2천여 명이 그 대상이라고 한다. 구제 규모는 총 1,000억원을 넘어선다. 이 재원은 예보기금에서 충당한다니 누구 돈으로 누가 인심 쓰겠다는 것인지 황당해진다.

후순위채권자는 보호해야 할 예금자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좀 과장되게 비교하자면 저축은행의 후순위채권은 주식시장의 정크본드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건 저축이 아니라 투자, 그것도 위험부담이 큰 투자를 한 것인데 왜 잘못된 결과를 바로잡아주겠다고 ‘법’을 만들고, 공공기금을 넘보는가. 또 왜 과감하게 후순위 채권을 매입한 그들을 판단력 없는 금치산자 취급을 하는 것인가.

예금자보호를 위해 각 금융사가 출연한 예보기금을 정치권에서 정치적 잣대로 멋대로 써대도 되는 쌈지 돈처럼 여기도록 금융사들이 손 놓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아무리 국회라 해도 이런 월권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본회의 통과 여부도 불투명한 일에 지레 열 올릴 뜻은 없고 다만 정치인들이 그토록 선심 쓰고 싶다면 문제의 근본부터 손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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