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유 그리고 한국
미국, 석유 그리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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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구대로 이란산 원유 수입물량을 줄이든 말든 유가 급등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세계 원유시장이 요동을 치는 판이니 이란산 원유 수입 여부는 차라리 부차적 문제다.

생계형 대출이 급증하면서 가계부채는 나날이 늘어 작년 9월말에 이미 가구당 평균 4,458만원씩의 빚을 지고 있는 판이다. 여기에 기름 값이 뛰면 덩달아 뛸 물가는 또 어디까지 가고 궁핍해져만 가는 가계는 또 어떻게 꾸려가며 서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언론의 관심사는 거시적인 데 머물지만 서민들 입장에서는 당장 물가는 치솟을 텐데 급여 동결되는 일터 또한 늘 테니 그야말로 생존을 건 싸움에 내몰릴 판이다.

미국인들이 올해 의회 개원 첫날 의사당 앞에서 ‘당장 정의를 원한다’고 시위를 벌였다지만 그들이 이란 압박으로 인해 입을 자신들의 피해를 제대로 보고는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로 돈을 버는 곳은 월가요 석유메이저들일 테고 보통의 미국시민들은 그저 치솟는 물가에 뒷통수 맞을 게 뻔한 데 그 문제를 거론한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툭하면 자신들이 벌인 싸움에 너도 나도 끼어들라고 협박을 한다. 북핵문제로 신경쇠약에 걸린 이명박 대통령의 한국 정부는 ‘이란 핵과 북핵은 별개가 아니다’라는 방한 미국 대표단의 아인혼 이란`북한제재조정관의 한마디에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그런 형편이 한국만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저마다 어떤 협박을 받았든 인도 한 나라만 빼곤 모두 미국의 요구를 결국 수용하고 나선다. 인도는 어차피 현재의 자국내 인플레이션만으로도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니 미국이 뭐라 하든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

미국이 휘두르는 무기가 무엇이 됐든 세계 각국을 돌며 협조라는 미명하에 가하고 있는 협박은 실상 조용한 목소리로 다가와 험한 말하는 덩치 큰 폭력배를 보는 듯 두려움을 준다. 요즘도 학교에서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는 소위 ‘일진’이니 ‘짱’이니 불리는 주먹패들도 모두가 내편에 안서면 모조리 ‘적’으로 간주하며 건들거린다고 알고 있다. 이런 부류들에게 이유는 만들면 생기는 것이라는 걸 모든 역사가 보여준다. 이건 동네 골목의 어린애들 싸움이건, 국제적인 전쟁이건 별 다를 게 없다.

아무튼 한국은 이래저래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게다. 수량 역시도 주변국들 수준에는 맞춰야 하니 별 선택지도 없을 수 있다. 거기에 제 나라 군대 두고도 국방을 남의 나라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의 비애도 거기 한몫쯤은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기세등등하던 명나라군이 실제 전투에서의 효용은 별로 없었으면서 민폐는 엄청나게 끼쳤지만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은 그들의 참전 자체를 은혜로 여기고 명나라 망하고도 몇 백 년을 은혜 갚기에 매진하느라 병자호란 같은 치욕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과 다른가. 보수단체의 주장들을 보면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들에게 한국동란에 참전해준 미국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감히 반미를 말하는 젊은이들은 반역자요, 친북주의자라고 기염을 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보수단체의 주장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대변자임을 자임하는 메이저 언론에 생생히 전달되는 반면 그들에게 몰매 맞는 젊은이들이나 진보세력의 소리는 그냥 뭉개 버리고 있으니 결국 보수단체 주장이 오피니언 리더들의 주장이라는 등식이 나올 법하다.

얘기 다시 돌려보면 지금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북핵? 중요한 문제다. 수출? 역시 중요하다. 기업? 역시 살아야겠지.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수 국민의 생존보다 중요한가. 어차피 기름 값은 오르게 돼 있다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살림형편 덜 나빠질 선택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지금 자기 부처내의 추문으로 정신없어 뵈는 외교통상부가 얼마나 제 역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에 앞서 청와대에서는 무슨 언질이라도 줬는지 더 큰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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