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99%' 反월가 집회, 한국에는 없었다
[기자수첩] '99%' 反월가 집회, 한국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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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강현창기자] "反월가 집회가 맞나요? 금융자본의 탐욕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네요."

'Occupy'운동 지도부로부터 '국제행동의 날'로 정해진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취재를 하던 외신기자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굵직한 빗방울을 뚫고 수백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정작 금융자본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점령하라"라는 구호 아래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시위 물결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달랐다. 이번 집회가 '99%'를 대변하는 집회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실제 금감원 앞에서 차례대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은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자, KT정리해고자, 키코(KIKO) 피해자 등이었다. 이들은 "내 돈 내놔라", "다시 고용해라", "보상금 지급하라" 등 자본의 탐욕에 대한 규탄보다는 이미 전부터 주장해 오던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호소하는 데 집중했다.

이들은 주로 각자 속한 시민사회단체나 노조, 피해자모임 등에서 집단으로 동원된 사람들이었다. '자발적 참여'를 가장 큰 무기로 삼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등의 집회와는 성격부터 달랐다.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反월가 집회의 경우 특정 집단을 대변하지 않고 국민 99%의 뜻을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조차 "그들의 우려를 이해한다"며 공감을 표했을 정도다.

그러나 한국의 이날 집회에서는 자발적으로 참가한 시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터뷰를 위해 신원을 물어보면 모두 XX당, XX위원회, XX대책위 관계자 뿐이었다. 20여명 남짓의 외국인들만이 스스로 피켓을 만들어 집회에 참석했을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99%는 집회현장에 없었던 것이다.

금감원 정문 앞 계단은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모임이 점거했다. 인도는 금융소비자협회가 마련한 차량과 스피커가 자리를 잡았다. 마이크를 중심으로는 사회당과 KIKO대책위, 상용차와 KT의 해고자들이 순서를 기다렸다.

이 시간 서울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빈곤사회연대, 민주노총 등의 "노동권 보장하라", "정리해고 중단하라", "임금 인상하라" 등의 구호들이 난무했다.

물론 집회에 참석한 이들 역시 99% 가운데 일부일 수는 있다. 하지만 최근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反자본 집회'는 특정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모임과는 다르다. 

미국처럼 한국도 '양극화'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2003년 카드대란, 2007년 부동산 거품 붕괴, 2008년 리먼사태, 올해 유로존의 재정위기 등 반복되는 경제위기에 한국의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1%와 99%의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민들의 진정어린 목소리를 담아낼 기회는 몇몇 이해집단의 욕심에 날려버리고 말았다. 전세계적인 시위 움직임에 '숟가락 하나 얹듯' 묻어가려는 이들의 욕심이 집회의 진정성을 훼손한 것이다.

당초에도 이번 집회가 몇몇 단체들의 주도 하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결국 시민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 왔던 터다.    

이날 오전 10시 처음 국내 집회를 제안한 브라질 유학생 아더씨는 '함께 점령하라(Occupy together)'라는 온라인사이트를 보고 찾은 스페인, 호주, 미국, 영국 유학생들과 피켓 3장을 들고 여의도를 지켰다.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 한국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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