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커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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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산이다.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론을 넘어 넘치는 자신감으로 수출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강행해온 한국의 경제는 잇달아 쏟아지는 세계 경제의 악재 더미에 깔려 버둥대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됨으로써 디폴트 우려는 일단 잠재웠으나 더블딥 우려는 더 커져가고 있다. 그에 따라 협상 타결 직후 안정세를 되찾는 듯이 보이던 한국 증시는 이틀 만에 시가총액 65조원이 증발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심각한 재정상황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에서도 재정부채 문제가 불거지는 국가들이 잇달아 대두되면서 각국이 긴축재정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지금 하나같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으니 꽤 오랜 기간 경기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그러니 국내 물가불안도 외면한 채 정책 방향을 수출 쪽으로만 올인 해 온 한국은 참으로 큰 일이 났다. 어느 나라라 해도 당분간은 형편이 녹록치 않겠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은 더 심각한 상황이 닥친 것이다.

이미 지난 연초부터 이런 우려가 제기됐지만(2011.2.25자 본 칼럼 참조) 정부는 철저히 외면했다. 물론 지금과 달리 연초에는 아랍권의 줄을 잇던 반정부 시위와 그로 인한 원유가 폭등과 그에 못지않게 걱정스러운 곡물 가격 상승 추세 등이 계기가 된 걱정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외부적 변수에 대응할 국내의 구조적 문제가 그때와 지금 한결같다는 점이다. 외부적 변수는 언제든 등장할 수 있고 그런 어떤 변화에든 대응할 정책의 유연성이 갖춰져 있다면 남보다 더 위험할 까닭은 없다. 한국은 그런 유연성이 결여돼 있다.

수출성장 위주 경제의 구조적 틀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마다 정치적 딜레마를 숫자적 성장으로 돌파하려는 정권의 무책임으로 인해 계속 미뤄지기만 했다. 결과적으로 소비주체들의 소비여력을 갉아내 소수의 대기업만 키우는 외발 자전거에 가속을 붙여줌으로써 경제구조의 하부가 매우 취약해진 것이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이런 정책은 더욱 강화됐다.

현재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는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입 비중 기준으로 2002년 54.6%에서 2010년 79.8%로 높아졌다. 반면 나라 빚과 가계부채를 합치면 1194조8000억 원, 기업부채까지 더하면 국내총생산의 두 배 수준이다. 지난 1분기 말 가계 빚 규모가 800조 원을 넘었다.

가계 소득 증가를 능가하는 가계 부채 문제는 우리 경제의 체질 자체가 허약해지는 문제다. 한번 요란스럽게 떠들다 그만 두어도 좋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깊이 있게 천착하는 학자도, 언론도 없다. 정부는 아예 외면으로 일관하니 치지도외하더라도 적어도 관련 학자나 정부가 덮고 가려는 문제를 들추는 것이 주업인 언론이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는 풍토는 분명 문제가 크다.

국내 사정이 이러니 국내 금융업도 당장 발등의 불을 끄겠다고 자꾸 빚내서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나중 문제까지 염려할 겨를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건 가계를 분해시키는 일이고 국가경제 체제를 무너뜨릴 위험성이 큰일이며 금융업 자체로도 그저 언 발에 오줌 누는 일 이상은 못된다.

이미 물가는 폭등하는 데 소비여력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던 한국 경제가 이제 대외적 요인으로 그런 추세에 가속이 붙게 생겼다. 대 중국 수출이 미국을 앞질렀다고는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이다.

특히 자동차와 정보기술, 반도체 등 한국 첨단제품의 주 소비국이다. 그 미국의 더블딥이 현실화되는 것만으로도 한국 경제는 당장 엄청난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세계 각국이 긴축 기조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중국마저 긴축재정의 고삐를 더욱 죌 것이라고 한다.

물가를 챙기고 가계 소득을 늘리기 위한 기반을 닦을 기회를 정부의 잘못된 선택으로 지난 3년여 동안 너무 여러 번 놓쳤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상황에 대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명분도 스스로 내버렸다. 한국 경제, 이제 어쩌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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