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과 금융의 위기
저축은행과 금융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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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며 시작된 부산저축은행 수사였다. 그러나 이는 현재 커져가는 저축은행 위기의 뇌관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삼호, 프라임 등 계속 뉴스가 이어지는 저축은행계의 연쇄폭발 조짐은 실상 그 내막을 아는 이들에게는 새삼스러울 게 없는, 예고된 위험이었다.

시중은행들이 부동산 경기 후퇴를 예견하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위험에 대응하기 시작했을 때 투자대상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저축은행들은 그 위험한 시장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해 이미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그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저축은행들은 마치 벼랑 끝에 몰린 짐승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모습이었다.

이런 저축은행들의 위험한 행보가 절정에 달했던 한 2년 전쯤 필자가 들은 얘기다. 당시 퇴직 후 저축은행에 몸담고 있던 한 전직 시중은행 지점장은 그 때 벌써 “지금 상태로 봐서는 정치적 보호가 없는 한 저축은행의 90% 이상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저축은행 예금자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저축은행의 모태가 서민들을 대상으로 일수 찍던 무진회사였음을 상기시키며 그 태생적 한계를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현재로서 바람직한 해답 찾기와는 거리가 멀다. 세상 어떤 금융업이라도 그 출발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므로.

저축은행은 사금융을 제도권에 흡수시켜 공금융화를 진행해왔으나 상품개발 등에 법적, 정책적 규제는 많고 정부의 간섭은 계속 이어져 독자적 성장에 제동을 걸어왔다. 그들이 사금융시장을 제도금융 안으로 끌고 들어왔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금융시장은 더 커져갔다. 그리고 다시 사금융시장을 장악한 대부업체들을 제도금융권으로 끌어들였으나 명칭에서부터 제도권 편입을 거부한 대부업체들과의 차별성을 확보해주는 정책적 노력이 부족함에 따라 비정한 사채업자들이 더 기승을 부리게 만들었다.

공금융의 성격이 명확한 시중은행에 비해 개인 자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저축은행들은 아직 공금융의 범주에 들기엔 그 성격이 불명확한 한계가 있다. 그런 만큼 오히려 정부의 입김에 훨씬 더 취약하다. 따라서 오늘날 저축은행의 부실에는 그만큼 정부의 책임이 크다. 어린 아이의 잘못은 그 부모의 책임이 더 큰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진정으로 염려해야 할 것은 저축은행의 부실이 결국 전체 금융의 위기로 이어져 가더라는 다른 나라들의 경험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상호은행 부실이 일본에 소위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을 선사했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세계 금융위기로까지 발전했다.

우리네 저축은행들이 오늘날 겪고 있는 위기 역시 부동산 경기 후퇴가 가장 큰 원인이다. 부동산 경기에 버블이 커지면서 뒤늦게 주택시장에 뛰어들어 무리한 투자를 하던 건설업체들과 이로 인해 새롭게 커져가는 PF시장에 뒤따라 뛰어든 저축은행들은 경제위기를 스스로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보다 경제위기의 불길을 고스란히 먼저 뒤집어쓴다.

이런 위험을 더 증폭시키는 것은 투자자, 저축은행 고객들의 불안감이다.

이미 잇단 저축은행 위기 소문에 예민해진 투자자들이나 고객들은 작은 변동에도 발작적 반응을 보이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그나마 외환위기 당시에도 그랬고 오늘날도 위기 속에서 한국의 금융소비자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는 이유는 일정 한도 내에서 저축에 대한 정부의 보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한 미디어에서는 그 보장이 저축은행의 부실을 키웠다고 게거품을 문다. 어떻게 저축은행의 5천만원이라는 예금자 보호한도가 시중은행과 똑같냐는 것이다. 문제를 저축하는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보는 게 아니라 정책자의 시선에서 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소리다. 그보다 저축은행이 이미 제도금융의 고리 안에 있음을 간과한 철없는 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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