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금융권, 하반기엔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길…
[기자수첩]금융권, 하반기엔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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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서지희기자] 16세기 영국의 금융전문가 토마스 그레셤은 당시 부국강병을 꿈꾸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보낸 서신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썼다.

그 유명한 '그레셤의 법칙'이다. 순도가 서로 다른 금화·은화·동화를 동일한 액면 가치로 찍어 시중에 유통하면 실질 가치(순도)가 높은 양화는 사라지고 악화만 남게 된다는 논리였다.

이는 신용 화폐경제로 바뀐 현대사회에서 선택적 오류나 정보 부족 때문에 같은 종류라도 나쁜 것이 좋은 것을 압도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설명할 때 흔히 인용되곤 한다.

토마스 그레셤이 2011년 한국에서 살았다면 600년이 지난 현재도 자신의 법칙이 통용되고 있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할지 모르겠다.

연초 불어 닥친 저축은행 부실 사태의 태풍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려 애쓰던 금융권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현재까지 10곳이 넘는 저축은행들이 영업정지 조치에 이어 매각대상으로 전락한 가운데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하반기 추가 영업정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그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기에 7조원대로 알려진 부산저축은행그룹 금융 비리는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저축은행 감사·검사·조사 권한을 갖고 있는 감사원, 금융감독원, 국세청을 비롯해 전·현 정부 인사 등이 관련돼 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물가상승, 가계부채, 부동산 침체 등과 같은 금융권의 악조건들이 자리 잡고 있는 마당에 해결의 단초는 보이지 않고 첩첩산중인 셈이다.

최근에 만난 한 금융권 관계자의 "지금 금융권의 현안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이의가 없는 점이 안타깝다"는 개탄은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하반기를 한 달여 앞둔 지금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좋은 화폐'가 '나쁜 화폐'를 밀어냄으로써 금융권에 늦게나마 긍정의 힘이 찾아오기를 수백 년 묵은 법칙에 빗대어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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