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여론과 대중의 진심
미디어 여론과 대중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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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대통령 모두를 놓고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가 흥미를 끈다.

'1위 박정희, 2위 노무현, 3위 김대중, 4위 이명박…꼴찌 노태우'라는 결과가 그간 미디어가 조성한 여론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18년이라는 긴 기간 통치함으로써 실적을 쌓을 수 있었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1위를 했다는 것이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집권기간이 길었던 만큼, 또 군부를 장악한 쿠데타 정권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만큼 그의 집권기간 중 눈에 띄는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실상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대중들의 기억 속에는 그 성장의 공이 크게 부각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위 노무현은 미디어 여론이 대중적 진심과는 꽤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히 메이저 언론들에 의해 뭇매를 맞고 현 정부하의 검찰에 의해 몰릴 대로 몰리다 세상을 떠난 그가 전체 조사자의 30% 이상 지지를 받고 있다.

이 결과를 보다 문득 병자호란을 겪을 당시 민중들이 당시 집권세력에 의해 쫓겨난 광해군에게 이런 정서를 갖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광해군을 몰아낸 것은 민중이 아니라 양반계급, 그 중에서도 서인 세력이 주동이 된 것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왕실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쟁으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 백성들 사이를 누비며 고무·격려하고 전장을 지원한 인물이다. 그러나 전쟁 수행을 위해 긴급히 그를 세자로 책봉하고 힘든 일을 맡겼던 아버지 선조와 서인 세력은 전쟁이 끝나자 다시 그를 끌어내리려 끊임없는 시도를 했다.

그런 시련을 겪고 선조 사후 왕위에 오르지만 결국 그는 그토록 그를 밀어내려던 서인 세력에 의해 밀려났다. 선조의 나이어린 후비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고 그의 아들 영창대군을 죽인 것과 명·청 사이에 줄타기 외교를 벌였던 점이 인조반정 세력에게 명분을 쥐어줬다.

그 가운데 인목대비와 영창대군 건은 정권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기는 했겠으나 '효'를 그 무엇보다 앞세운 조선 사회에서 용납되기 어려웠으리라 예상해 볼만하다. 그러나 명`청 간 줄타기 외교를 비난한 인조반정 세력의 명분론은 결국 조선 사회의 고착적 이데올로기를 탄생시키며 조선 사회를 서서히 죽어가게 만들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그로 인한 백성들의 비참함을 직접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겪은 광해군이기에 또 다른 전쟁의 위험을 막기 위해 종주국 노릇을 하던 명나라와 신흥 강국 청나라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일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정세력은 이를 임진왜란에 원군을 보낸 대국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비난하며 왕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또 다른 전쟁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고도 그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더욱더 명분론에 집착했다. 반성을 하는 순간 반정의 명분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을 터이지만 이후 대한제국이 선포될 때까지 몇 백 년을 망한 명나라를 향해 절하고 제사지내는 기막힌 코미디가 계속됐다.

그런데 인조반정 세력의 행태를 보면 이즈음의 정치판을 오버 랩 돼 보이곤 한다. 반정세력은 반정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 광해군 시절의 정책을 모조리 갈아엎다시피 내버리고 바꾸기에 급급했다. 명분은 만들면 명분이 됨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 결과로 그들이 세운 왕이 침략국 일개 장군 앞에서 땅에 세 번씩이나 머리를 박아가며 아홉 번의 절을 하고 만다.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집권한 현 정부 역시 과거 2대 정부의 10년간 마련된 정책을 버리고 뒤집어엎기에 참으로 열성적이다. 그러느라 국력이 쇠진하든 말든, 취직 못한 젊은이들은 결혼의 꿈을 접고 취직한 젊은 부부는 일에 치여 아이 낳을 엄두도 못 내든 말든 그런 절박한 상황은 눈에 들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런 그들에게서 백년대계는 고사하고 10년 전망이라도 할 뜻조차 발견하기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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