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누굴 기르고 있나
우리 지금 누굴 기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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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졸업식이 몰려있던 지난 주 동네 식당에 갔다가 옆자리 중학교 졸업생인 듯한 10대 여학생 몇 명이 저희들끼리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기가 막혔다. 듣자 해서 들은 게 아니라 옆자리 다른 손님들은 신경 쓰지 않는 그들의 말소리가 저절로 들려왔다.

말끝마다 욕이 붙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들의 대화 내용은 더 탄식이 나올만했다. 남자친구가 술에 취해 어쨌다느니 하는 소리가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는 저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심한 아이들의 경우 욕설이 대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중학교 선생님이 졸업식 날 제때 퇴근을 못한 채 졸업생들이 행여 어디 가서 말썽을 부릴세라 인근 지역을 순찰해야만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졸업식 당일 오후 8시까지는 그 학교 학생신분이기 때문이라니 그것도 참 희극적인 느낌을 줬다. 오전 중에 졸업식 끝났다고 해방감에 싸돌아다닐 아이들 뒤를 소수의 선생님들이 어떻게 쫓아다니며 단속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됐다.

그 아이들 문제가 새로운 얘기는 물론 아니다. 중학생 시절이 가장 격정적인 시기인지 난폭하기로도 그 무렵의 아이들이 가장 심하다는 소리를 이미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자식을 길러본 부모의 입장이지만 참으로 자식에 대해 아는 게 없이 청소년기를 넘겼구나 싶은 대목이다. 아마도 많은 부모들이 내 자식은 다를 것이라고 믿고 있을 테지만 과연 부모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또래 집단 속에서 얼마나 다르겠는가.

이런저런 염려를 하다가도 습관처럼 금세 잊고 말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 올라온 사회면 뉴스들을 보니 쉬이 잊고 만 스스로가 매우 민망해진다.

아내를 죽이고 몇 년간 이웃과 자식들에게는 요양원에 가 있다고 하고 시간이 흘러 아내 명의의 예금을 찾기 위해 실종신고를 낸 남편, 세 살짜리 아들을 폭행해 죽인 아버지와 그 동안 술에 취해 있었다는 어머니, 부모를 차례로 살해한 아들 등 가족 살인 소식이 하루치 뉴스로 줄줄이 올라와 있다.

한쪽으로는 촉망받던 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홀로 병들어 굶어죽었다는 기막힌 뉴스도 올라 있다. 집단 해고에 반대하며 장기 파업을 벌이다 해고된 한 노동자는 아직도 자신이 해고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1년 넘게 자기 집안에 스스로 갖혀 홀로 파업중(?)이라는 서글픈 소식도 같은 날 뉴스로 올라왔다.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살인이 벌어지는 사회에서 이웃의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비참하게 죽는다 한들 눈에 뵈기나 할까 싶어 입이 마른다. 출산 장려를 꾀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몇 년 유독 가족의 중요성을 대형 매체마다 그토록 자주 강조했지만 과연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 더 소중하게 여겨졌을까 모르겠다.

교육부터 시작해 사회시스템 전체가 오직 승자만을 조명하고 그 발아래 쓰러진 월등히 많은 패자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관심도 두지 않는 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그 속에서 백지처럼 순수하던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먼저 배울까. 결국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잔인한 이기심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자란 그들이 더 자라 칼을 들어 부모를, 배우자를 찌를 때조차도 죄의식은 없지 않을까 싶어 참으로 우울하다.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한 구제역 발생지역에서 벌어진 320만 마리의 가축의 매몰로 심각한 토질, 수질 오염의 우려가 제기되고 식수까지 위협받는다는 소식도 같은 날 뉴스로 올라왔다. 사람과 가축의 얘기로 나눠보고 싶지만 실상은 어떤 정책, 어떤 행정적 조치를 펼칠 때든 ‘사람’을, ‘생명’을 보지 않고 ‘일’만을, ‘성과’만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이지 싶어 시름이 깊어진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을 ‘사람’으로 기르고 가르치는 게 아니다. 기계에 정보를 입력시키듯 ‘지식’을 주입하지만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에는 아예 눈조차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이웃과 친구들은 오직 싸워 이겨야 할 적들로만 정보 입력된 채 아이들은 세상을 파이터 게임의 장으로 인식하고 거칠어져 간다. 그 끝은 가족조차 종종 ‘적’으로 인식되어 파괴적인 결말로 치달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단지 하루치의 사회면 뉴스만으로도 이미 사회의 축소판이 된 가정의 붕괴가 실감나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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