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칼럼] 아랍권 진출전략 새로 짜야
[서정민 칼럼] 아랍권 진출전략 새로 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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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
튀니지에서 촉발된 민주화 물결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튀니지의 정권교체를 이끌어 낸 후 이집트 정부를 풍전등화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버티기' 전술을 취하고 있지만 후스니 무바라크 정권도 오는 9월 대통령 선거 이전에는 퇴진할 예정이다. 시민혁명의 높은 파도는 다른 아랍 국가들로 넘쳐 흘러들어가고 있다. 알제리, 예멘, 팔레스타인, 요르단, 수단 등에서도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아랍권 민주화 열풍은 단순한 정치적인 현상이 아니다. 우선 그 배경에 있어서 생활고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집트의 경우 인구의 4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12.8%, 공식 실업률은 9.7%에 달한다. 실질 실업률은 30%에 육박한다. 인구의 66%를 차지하고 있는 30대 이하 청년층에 가장 많은 실업인구가 집중돼 있다. 혁명의 끝은 결국 경제개혁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아랍권의 경제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는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수에즈 운하가 막힐 경우 유가가 200달러에 달할 것', '이집트 발 아랍권 정세 불안이 주식 시장 폭락으로 이어질 것' 등의 중단기적인 여파에 집중하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는 시각이다. 아랍 국가의 정권붕괴 그리고 이에 따른 경제 전략의 수정은 중동 경제의 틀을 완전히 바꿀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세계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랍 경제의 특성, 즉 '지대(地代)추구형 경제(rentier economy)' 때문이다. 석유가 바로 지대, 즉 렌트다. 월세를 받듯 유전이나 가스전에서 국부를 창출하는 것이다. 아랍 산유국의 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석유 및 가스다.

그런데 유전과 가스전은 모두 국가 소유다. 또한 국가, 정부, 혹은 왕족이 최대 생산자이자 최대 분배자다. 아랍 경제가 국가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해 우리가 중동 지역에서 400억 달러 전후의 플랜트 수주를 했지만, 민간부문에서 수주한 것은 한 건도 없었다.

여기에 이집트, 튀니지 등 저산유국과 비산유국 경제도 지대추구형 경제의 틀에 묶여있다. 이들 국가의 국민들이 산유국에서 일해 번 해외근로자 송금은 비산유국 경제에 중요한 외화획득원이다. 또 아랍 산유국들은 비산유국의 최대 투자세력이다. 2010년 걸프 산유국의 다른 아랍국가에 대한 투자가 약 250억 달러에 달했다.

결국 정권의 붕괴나 정치체계의 변화는 경제구조 및 제도를 뒤집어 놓게 된다는 것이다. 유전 및 가스전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고 여기서 나온 오일머니의 분배방식도 바뀔 것이다. 혁명 정부는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 발주보다는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분배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세계 최대 프로젝트 발주지역으로서 아랍권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작된 이번 시민 봉기의 봇물은 동구권 민주화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분명히 중장기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왕정 산유국들로 확산될 것이다. 석유 수입, 플랜트 수출 등 아랍 및 이슬람권과 깊숙한 경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이번 사태를 주의 깊게 지켜보며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장기적으로 아랍권은 그동안 석유 중심의 산업구조를 다각화하는데 전력할 것이다. 또한 일자리를 비교적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제조업 육성에 나설 것이다. 매년 수천억 달러에 달했던 대외 투자보다는 국내투자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무역을 통해 외국의 상품을 수입하는 것보다는 수입대체산업의 육성에 나설 것이다. 왕족, 독재 군부의 최고 권력자가 발주와 낙찰을 결정하던 관행에 벗어나 보다 투명한 의사결정과정을 마련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이에 따른 대중동 진출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단순한 상품수출 혹은 플랜트 수주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인트벤처를 통한 제조업 분야 진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로비와 인맥에 의존한 수주방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쟁력을 갖춘 플랜트 수주 방안도 수립해야 한다. 예멘, 수단, 시리아, 알제리, 이집트, 등의 유전 및 가스전 개발에도 적극적인 투자로 참여해야 한다.

아랍권의 정치와 경제의 틀이 변모하고 있다. 따라서 원유수입과 상품 수출 및 플랜트수주라는 기존의 틀에서 우리도 벗어나야 한다. 보다 동반자적 협력의 틀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새로운 중장기 진출 전략이 마련된다면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보다 원활히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환경이 마련될 가능성도 커졌다. 위기와 혼란 속에는 더 큰 기회가 있을 수 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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