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과 개혁 그리고 타이밍
비전과 개혁 그리고 타이밍
  • 홍승희
  • 승인 2003.01.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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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주의자들은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 역사의 힘과 그 역사를 추동하는 개인들의 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의 힘은 미미하지만 결국 그런 개인들의 집합이 이루어내는 것이 역사를 이룬다. 그 집합의 힘은 어느 경우에도 버릴 수 없는 그 시대의 희망으로부터 나온다.

현재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흐름 속에는 강한 희망이 깃들어 있다. 이 희망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스스로 비전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는 민족인양 지내왔다. 우리에게 스스로가 만들어낼 역사에의 희망이 사그라들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새로운 비전은 동북아중심국가.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 한덩어리의 새로운 경제공동체를 구상하는 이 개념을 흔히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관련지어 생각하지만 이는 단지 지정학적 요소로만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 경제적 토대와 사회적 안정 같은 여러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적합성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실상 이 꿈은 우리가 구체화하기 전에 주변국들의 경계심에서부터 먼저 터져나왔다. 아이러니다. 일본의 경제 전문가들이 먼저 한국이 동북아의 트래픽 중심지가 될 경우의 두려움을 말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의 일이니 거의 1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우린 겨우 영종도 공항건설, 부산 다대포 항만 공사를 시작하려고 할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서서히 우리도 우리의 위치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이런 연장선상에서 남북화해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한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관념적 민족통일이 아니라 경제적 효용성 때문에 더욱 구체화됐다. 그리고 이제 우리 시대의 창조적 비전으로 가다듬어지고 있다.

개혁 또한 이제는 경제적 효율을 위해 더 필요하다. 정치적 구호에 그치는 개혁이 아니라 경제적 효율을 높일 안정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와 정치의 개혁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같은 개혁에 타협이란 어울리지 않는다. 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그 원칙을 세우는데 있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물론 일부의 이해에 기초한 저항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런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개혁이 후퇴한다면 그 저항하는 개개 구성원들의 이익 또한 지켜질 수 없다.

우리의 지난 역사 속에서 배울 교훈 중 하나는 전체의 이익을 위한 원칙과 소수 기득권층의 이해에 기반한 논리가 충돌할 때 강력한 왕권이 무성한 조당의 공론보다 더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 5백년간 백성과 국왕 사이에서 여론을 독점해온 양반 지배계급들이 종종 왕권보다 더 강해지면서 그들만의 밥그릇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져 정국을 소용돌이로 밀어넣곤 했다. 그리고 그런 ‘왕권 위의 세도’를 가진 기득권이 끝내 영·정조 시기의 개혁을 무위로 만들며 우리 민족을 세계사 속에서 낙오하도록 만들었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전세계를 기준으로 놓고 볼 때 결코 뒤지지 않는 과학기술 수준을 갖고 있었다고 관련 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 개혁의 시기를 놓치고 우리는 낙오했다. 식민지의 뼈아픈 역사는 그렇게 썩은 뿌리에서 시작됐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개혁도 이 시기를 놓치면 다시 우리를 낙오하게 만들 수 있다. 영·정조 시절의 과오를 되풀이할 수도 있다.
기득권이 공고화되고도 조용히 발전한 사회는 없다. 피흘리는 혁명을 치뤘거나 발전의 지체를 겪으며 대외적으로 그 영향력이 줄어드는 역사적 경험을 한 사회는 많다.

물론 서투른 개혁이 오히려 참화를 자초한 사례도 있다. 노련한 운전자는 결코 빙판길에서 급정차, 급회전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는 한이 있어도 참화는 피해간다.

정책에도 미세조정의 기술은 중요하다. 어느 정책이든 급선회하면 충격이 크고 더욱이 뺀질뺀질 비협조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책을 구사해야 할 경우라면 매우 위험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원칙이 후퇴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빙판길일수록 브레이크는 가급적 밟지 않는 법이다. 개혁을 시도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마치 빙판길 위의 운전과 같아 보인다. 많은 기득권층의 힘이 어지간히 공고화되가는 상황에서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지만 그 저항과 비협조의 수준은 뺀질뺀질한 빙판길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노련하게 사회운용을 해나갈만큼 성숙한 사회가 됐다고 믿고 싶다. 사회운용은 운전자 혼자하는 차량 운행이 아니라 모을 수 있는 모든 사회적 역량을 모아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가며 할 수 있다는 점을 새 정부와 국민 모두가 잊지만 않는다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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