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관장과 이혼소송 '또 다른 위기'···그룹 정통성 지키기 총력
서울파이낸스가 창간한 해 2002년 재계 역시 분주했다. 서울파이낸스가 첫 발을 준비하는 그 시간, 재계 오너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당시 재계 오너들의 모습을 연재물을 통해 되돌아본다. 미래는 과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2002년은 아주 중요한 해였다.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작고하고 그룹 회장직에 최 회장은 2002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그룹 CEO 세미나에서 "생존 능력이 없는 계열사는 흑자라도 정리하겠다"라는 이른바 '제주선언'을 발표했다.
제주선언은 그룹 안팎으로 팽배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당시 SK 관계자는 "SK그룹이 단기간내에 공격적인 경영으로 급성장했다는 시각이 있지만 외환위기 이후 부실한 상위 그룹이 도태된 결과일 뿐 전혀 그렇지 않다. 그만큼 SK그룹이 위기를 바라보는 눈은 절박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손길승 당시 SK텔레콤 회장 등 최고경영진들은 이 선언에서 2005년까지 '계열사의 3대 생존 조건'으로 △사업모델의 경쟁력 확보 △세계적 기업 수준의 운용 효율성 △경제적 부가가치(EVA·영업이익 중 세금과 자본비용을 뺀 금액)가 더해질 것을 설정했다. SK 사장단은 2005년까지 이같은 생존 조건을 확보하지 못한 계열사에 대해서는 설령 이익이 나더라도 사업철수 통폐합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벌이기로 했다.
IMF 직후인 1998년 그룹 총수가 된 최태원 회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운 길을 간 적이 없었다. 회장 취임 당시에도 최 회장은 "혁신적 변화(Deep Change)를 할 것이냐,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Slow Death)"라는, 이른바 '딥 체인지' 리더십을 강조했다.
2002년 극한의 생존경영을 선언했지만,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과 그에 따른 소버린자산운용과의 경영권 분쟁 등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다. 최 회장의 '딥 체인지'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힘을 받으며 그룹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
2002년은 최 회장뿐 아니라 SK그룹 자체에도 대단히 중요한 해였다. 1994년 당시 선경그룹으로 인수된 신세기통신이 2002년 1월 SK텔레콤으로 흡수합병되면서 오늘날의 SK텔레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SK텔레콤은 SK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IT·통신서비스를 바탕으로 모빌리티와 반도체 등 다양한 사업영역으로 확장하는 발판이 됐다.
최 회장의 이 같은 위기돌파 능력은 경제계 수장이 되는 발판이 됐다. 최 회장은 2021년 2월, 4대 그룹 총수 중 처음으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추대됐다. 최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김택진 NC 대표이사를 부회장단으로 합류시켰고 2022년에는 부산엑스포 유치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을 바탕으로 최 회장은 올해 3월 대한상의 회장 연임에 성공하며 2027년 3월까지 경제계 리더 역할을 수행한다.
온갖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한 최 회장은 현재 또 다른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과 1조3800억원을 재산분할하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SK그룹이 성장하는데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이 기여했다고 본 것이다.
최 회장과 SK그룹 측은 재판부의 이 같은 결정이 그룹 성장의 정통성을 부정한 것으로 보고 지난 6월 대법원에 상고했다. 어쩌면 이번 이혼소송은 경영자로서 최 회장의 인생에 가장 큰 난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