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2-통신3사 톺아보기①] 민영화 22주년 KT, 한국통신에서 AICT 기업으로
[창간22-통신3사 톺아보기①] 민영화 22주년 KT, 한국통신에서 AICT 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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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체신부서 분리···대대적 통신 개방에 2002년 완전 민영화 이뤄
'민간 KT' 만든 주역···이용경 전 대표부터 'AICT 도약' 김영섭 대표까지
1982년 1월 4일 공사 청사에서 진행된 현판식 후 고(故)이우재 초대 사장(오른쪽)이 최광수 체신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KT)
1982년 1월 4일 공사 청사에서 진행된 현판식 후 고(故)이우재 초대 사장(오른쪽)이 최광수 체신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KT)

[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때는 2002년 8월 20일. 지난 1981년 1월 '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통신)'로 시작된 공기업이 약 15년에 걸친 민영화 절차를 마무리한 후 'KT'라는 이름의 주식회사로 다시 태어났다. 

앞서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통신 부분을 분리해 설립된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창립 초기 통신 대중화를 위해 전화 시설 공급에 주력, 1982년 450만에 불과했던 전화 회선을 불과 10년 만에 2000만 회선으로 끌어올리며 본격적인 '1가구 1전화' 시대를 이끌었다.

그러던 와중 각 선진국의 압력으로 대대적인 통신 개방이 추진되며 공기업의 민영화 논의가 일기 시작했고, 끝내 1987년 민영화 방안이 확정됐다. 한국통신은 1997년 정부투자 기관에서 정부 출자기관으로 전환됐으며, 2002년 5월에는 정부가 지분을 전량 매각해 완전 민영화를 이뤘다. 이 때부터 사명도 현재의 KT로 자리잡았다.

현재 KT와 함께 국내 이동통신 3사로 불리는 SKT와 LG유플러스 역시 그 뿌리를 타고 올라가면 한국통신을 만나게 된다. SKT는 1994년 한국통신이 SK그룹(당시 선경그룹)에 한국이동통신의 경영권을 넘겨주며 독립 사업자로 성장했으며, LG유플러스는 한국통신이 민간합작 투자로 1982년 출범한 '데이터통신주식회사'가 전신이다. KT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통신의 역사인 셈이다.

KT 광화문 사옥. (사진=KT)
KT 광화문 사옥. (사진=KT)

◇ '민간 기업' KT 이끈 역대 CEO···성과와 발전의 역사= 민영화 이후 KT의 첫 대표이사(CEO)로 임명된 이용경 전 대표는 취임 후 변화와 혁신을 중심에 두고 KT의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취임 전 6만 명에 이르던 직원을 약 3만8000명으로 줄이고, 대규모 발탁 인사에 나서는 등 공기업의 관료주의를 해체하는 데 공을 들였다. 통신 부문에서는 국내 최초 VDSL(초고속 디지털 가입자 회선)을 상용화하기도 했다.

2005년 차기 대표로 선정된 남중수 전 대표는 IPTV·와이브로 등 미래 성장동력 개발에 힘썼으며, 2006년 세계 최초 와이브로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후임 이석채 전 대표는 '탈통신' 기조 아래 2009년 글로벌 ICT 그룹 도약을 위한 KTF 합병과 2010년 국내 최초 MVNO 서비스 상용화, 2011년 유·무선 통합 서비스 브랜드 '올레(olleh)'를 통한 기업 이미지 혁신 등 굵직한 성과를 기록하며 회사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 전 대표의 뒤를 이은 황창규 전 대표는 2014년 취임 후 KT의 새 비전으로 '기가토피아'를 제창하고 기가인터넷과 5G 사업에 집중했다. 취임 첫 해 10월 출시한 기가인터넷은 당시 100Mpps 인터넷보다 최고 10배 빠른 속도를 제공했으며, 2019년에 이르러 가입자 500만 명을 돌파했다. 2017년 국내 최초 인터넷 은행인 '케이뱅크'를 출범했으며, 2018년 4월에는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2020년 구현모 전 대표의 취임 이후 KT는 통신 기업에서 ICT 인프라를 통한 디지털 플랫폼 기업(디지코·DIGICO)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는 취임 후 '디지코 KT'를 목표로 AI·빅데이터·클라우드 등 신사업을 추진하고 계열사를 재편했다. 또 기존 국내 통신과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중심의 체질을 글로벌, 신사업, B2B(기업 간 거래) 부문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 "정권 교체=CEO 리스크"···끝나지 않는 '정치 외압' 잔혹사= KT의 이같은 변화와 성장에도 그림자는 있었다. 22년 전 완전 민영화가 진행됐음에도 마치 공기업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것이다.

이용경 전 대표는 임기 만료 후 연임 의사를 밝혔으나 정치권의 개입에 결국 후보 공모에 참여하지 못했고, 남중수 전 사장과 이석채 전 회장 역시 정권 교체 후 각각 납품 비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황창규 전 대표는 유일하게 임기 6년을 무사히 마쳤으나 정치자금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연임 의사를 밝힌 구현모 전 대표 역시 KT 최대주주 국민연금을 위시한 정치권의 노골적인 압박에 후보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차기 대표로 지명된 윤경림 KT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 역시 여당과 국민연금의 압박으로 공식 내정 보름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후 수많은 정치권 인사가 후보자로 참여했으나, 결국 LG CNS 대표 출신의 김영섭 대표가 뒤를 이었다.

김영섭 KT 대표 (사진=KT)
김영섭 KT 대표 (사진=KT)

◇ AI·6G 시대의 KT···'김영섭'호가 보여줄 비전은= 민영화 이후 22년, 한국통신 시절을 포함해 4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온 KT는 이제 김영섭 대표의 조타 아래 새로운 미래로 항해하고 있다. 그는 올해 초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에 현장에서 구 전 대표의 '디지코 전략'에 공식적인 마침표를 찍고, KT의 통신 역량에 IT와 AI를 더한 'AICT(AI+ICT)' 회사로 거듭나겠다 밝혔다.

비록 취임 1년이 지난 현재 경쟁사인 LG유플러스에 국내 이동통신 회선 점유율 2위(IoT 회선 포함)를 내주는 등 통신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나, AI·클라우드 사업 등 신사업 부문에서는 체질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김 대표는 KT 내 기술연구조직을 세분화하고 각 영역을 신사업 방향에 맞게 재편하는 한편, 자체 클라우드에 힘을 빼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CSP(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와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MSP(매니지드 서비스 제공자)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달 30일 취임 2년차를 맞은 김 대표는 KT의 40년 역사를 발판으로 느리지만 선명하게 도약하고 있다. 아직 공과를 평가하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AI·6G 등 새로운 기술의 파도가 밀려오는 가운데 그가 이끄는 KT가 목적지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업과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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