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대표적인 '남초' 집단으로 여겨지는 건설업계가 최근 여성 사외이사 선임에 분주하다. 그러나 10대 건설사 가운데 여성 사외이사 1명을 넘게 둔 곳이 대우건설 한 곳뿐이라는 점에서 실상은 그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작년부터 본격 시행된 '여성 할당제'를 채우는 데 급급한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이 지난 24일 정기주주총회에서 회사 최초 여성 사외이사로 최진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마케팅 교수를 선임하면서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가운데 여성 사외이사를 둔 건설사는 8곳이 됐다. 이 가운데 2명 이상의 여성 사외이사를 둔 곳은 대우건설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난 28일 대우건설 주총에서 안성희 가톨릭대 회계학과 부교수를 사외이사가 선임되면서 늘어난 것으로, 건설사 이사회에 포함된 여성 이사는 1명이거나 아예 없는 실정이다. 

건설사들의 행보가 작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준수하기 위해 구색만 맞춘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본시장법 제165조20항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이사회 구성원을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남성 이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이른바 '여성 이사 할당제'로도 불린다. 법적 처벌은 없지만 ESG(친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개선) 경영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 비상장사로 법적 대상에서 제외된 롯데건설과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의 경우 여성 사외이사가 아예 없다. 도급순위 17위 코오롱글로벌과 도급순위 27위 KCC는 자산총액이 2조원을 넘어 법 규제 대상임에도 여성 이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올해 처음으로 내부에서 여성 임원이 나왔고 여성 팀장도 많아지는 등 현재 ESG 경영 흐름에서 전환기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이사회 내 사외이사가 2명 있다 보니까 다양성이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향후 점차적으로 다양화해 나가고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부 경영 임원으로 보자면 건설업계 유리천장은 더욱 견고하다.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분기보고서·사업보고서를 집계한 결과 상위 10대 건설사 등기·미등기 임원 735명 가운데 여성 임원이 20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사외이사를 제외하면 여성 임원은 12명으로, 고작 1.63% 수준이다.

10개 건설사 가운데 사외이사를 제외한 여성 임원을 가장 많이 둔 곳은 SK에코플랜트다. 비상장사인 SK에코플랜트는 자본시장법의 의무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미등기임원 82명 가운데 여성 임원이 4명이었다. 이어 삼성물산은 전체 미등기임원 151명 가운데 건설부문 여성 임원이 3명, 현대건설은 미등기임원 81명 가운데 여성 임원이 2명 뿐이다. 대우건설과 HDC현산, DL이앤씨는 여성 임원을 각각 1명씩 뒀다. 롯데건설은 보고서에 집계되진 않았지만 올해 1명의 여성 임원을 선임했으나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은 아예 여성 경영 임원을 두고 있지 않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ESG 경영 흐름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건설사들의 움직임이 아쉬움을 자아낸다. 다만 건설사로서는 업종 특성상 전문 여성 인재 풀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엔지니어들이 많은 업종인데 과거 공대 출신의 여성 인재가 많지 않았고 거친 건설현장, 잦은 해외 파견 등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선호하는 업종이 아니던 만큼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남초 업종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건설사들이 ESG 강화 차원과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회계·경영 관리 등 비건설 분야 전문가 발탁에 나서면서 여성 사외이사를 하나, 둘 선임하는 추세고, 여성 직원 비율 역시 과거 3~5% 내외였다면 지금은 10% 이상으로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다만 여성에 대한 문호가 더 넓어지려면 전문 인재들이 많이 양성돼야 하는 만큼 시간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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