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커지는 미 국채 리스크
[홍승희 칼럼] 커지는 미 국채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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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은행들 동향이 심상치 않다.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의 잇단 파산에 이어 랭킹 14위의 퍼스트리퍼블릭은행과 그레디트스위스의 위기설까지 뒤따르며 신용이 생명인 금융업 전반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불안한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1년이면 20여개의 은행이 파산한다는 미국이지만 이번 은행들의 잇단 파산과 위기설 확산은 이전의 금융위기와는 결을 달리 한다는 점에서 미 정부나 연준도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빅스텝이 예상됐던 미국 금리인상폭이 베이비스텝으로 바뀐 것이나 전례 없이 모든 예금에 대한 보장이 정부 정책으로 제시되는 것이나 다 경계심의 표현으로 읽힌다.

이런 현상을 두더지게임에 빗대어 위기에 봉착하는 은행이 당분간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는 분석도 나오는 형편이다. 국내 금융사들과 굳이 비교하자면 시중은행보다는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과 같은 2금융권 격의 지역기반 은행이나 중소형 은행들이 특히 위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시중은행에 비해 규모가 작은 제2 금융권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도모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위기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레고랜드 사태로 불리우는 강원도 발 채권시장 위기와 그로 인한 PF시장 부실화 우려에서도 일부 증권회사까지 포함된 2금융권이 먼저 위험에 노출됐던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위기는 늘 약한 곳에서부터 터진다.

은행들의 연쇄 파산은 금융위기의 대표적 전조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연준은 미국의 은행시스템은 여전히 건전하고 탄력적이라고 성명을 발표했지만 이런 성명이 나오는 것 자체가 미국 내에서 은행들을 보는 불안한 시선을 달래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이후 은행주들의 주가는 15% 이상 빠지는 등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커진 상태다. 경영위기에 직면한 은행들의 여신활동은 위축되고 그에 따라 부실기업들의 차입비용은 치솟고 있다. 미 국채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이미 2020년 5월 이후 최고 수준에 달했다.

로이터통신에서는 은행위기 확산으로 금융여건이 타이트해질 신호는 넘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연준도 최근 상황으로 가계와 기업에 대한 신용여건이 더 엄격해지고 경제활동, 고용, 인플레이션에 더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또한 이런 영향의 범위는 불확실하다고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보다는 양호하지만 미국의 국가부채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 만큼 다량으로 쏟아져 나온 미 국채는 그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간주되어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이나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선호되어 왔다.

공교롭게도 미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고 그 다음이 일본이다. 따라서 금리인상과 강 달러 기조를 통해 미국이 금융을 무기화할수록 방어하는 쪽에서 미 국채를 미국을 향한 무기로 사용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번 미국 은행들의 잇단 파산과 위기설의 확산은 미국 국채가격의 폭락으로 미실현 손실이 대거 발생한데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다르다. 이미 미 국채 가격의 폭락은 지난해 후반부터 시작됐고 그로 인해 경영 압박을 받는 은행들을 위해 연준은 국채를 담보로 자금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미 국채 과다보유로 인한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은행들에서 뱅크론 현상이 벌어지며 미 재무부가 긴급히 예금자 보호 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위기에 처한 은행들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튀어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 국채 투자비중이 과도하게 높았던 곳부터 위험에 먼저 노출되는 것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지금 미국 정부나 연준도 근본적 대응법은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물론 대책을 마련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다만 위기에 직면한 은행이 나타날 때마다 개별 대응하는 방식의 대처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번 위기의 원인이 된 미 국채가격의 폭락이 단지 은행들의 위험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안전자산 신화의 붕괴, 국가 채권에 대한 신뢰 붕괴로 인한 보다 본질적인 신용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실제적 붕괴는 전조현상이 나타나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나타난다. 금융에서는 그 기간이 통상 반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는 데 그런 전조에 얼마나 민첩하게 대응하느냐는 각 국가나 투자자들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날 게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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