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금융당국 칼 빼들었지만···'은행 과점 깨기' 가능할까
[초점] 금융당국 칼 빼들었지만···'은행 과점 깨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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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권별 특성·고객층 달라 '판 흔들기' 역부족
제도개선 통해 혁신서비스 출시 등 '우선'
"장기적 관점에서 챌린저뱅크 육성 필요"
서울 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신민호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 과점체제 해소를 위해 보험, 증권, 카드사를 새로운 '메기'로 키우는 방안을 폭넓게 검토하는 가운데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스몰라이선스(은행업 인가 세분화) 방식으로 타업권에 일부 은행업을 허용한다는 구상인데, 엄연히 업권 특성과 고객층이 다른 만큼 '판'을 흔들기엔 역부족이란 시각이 많다. 과점 해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묵은 규제를 개선해 혁신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보험, 증권, 카드사 등도 은행 고유업무 일부를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각 업권도 신사업 기회 확보 차원에서 의견수렴에 들어갔다.

앞서 정부는 은행과점 해소를 위한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과점해소 주문 이후 금융당국은 지난달 22일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이어 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 IBK기업 등 6대 은행의 금리담합 등 불공정거래 행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업권에서 관심을 두고 보고 있는 사업은 지급결제, 환전 등이다. 증권, 보험, 카드업권은 공통적으로 '종합지급결제' 업무 허용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지급결제 업무범위가 개인에서 법인으로 확대될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법인은 은행 계좌를 통해서만 송금이 가능한데, 법인지급결제 업무가 허용되면 앞으로 증권사를 통해서도 판매대금 송금, 급여이체, 공과금 납부 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보험사와 카드사도 자체 계좌를 통해 급여이체, 보험료 납입, 카드대금 결제 등의 서비스를 직접 제공할 경우 금융 소비자가 누리는 혜택이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자체 계좌와 각 업권이 제공하는 기존 서비스를 연계해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거나 유통, IT 등 비금융사업자와의 직접 거래를 통해 제휴 기회도 확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 플랫폼에 지급결제계좌가 생기게 되면 당장 MAU(월간활성사용자수)가 늘 것이고, 편의성과 수수료 측면에도 이점이 생길 수 있다"며 "카드사들의 빅데이터를 결합하면 다양한 사업이 나올 수 있어 업계 경쟁력이 제고되는 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고유업무인 환전업무도 증권, 보험사 등 타업권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정부는 지난달 10일 국내 9개 증권사도 일반 환전업무를 영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수수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면 환전 이용 고객들이 볼 혜택도 커질 수 있다.

다만, 현재 거론되는 업무들을 타업권이 영위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은행 과점체제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란 게 금융권 중론이다. 과점을 해소하고 경쟁을 촉진시키려면 5대 은행에 몰린 예금 및 대출을 다른 업권으로 분산시키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업권 특성이 다른 만큼 이용 고객층은 물론 적용되는 건전성 규제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험사는 고객 보험료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유동성·건전성 측면에서 대출을 마냥 늘릴 수 없는 구조다. 카드사의 경우 조달비용이 은행보다 높아 그만큼 대출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고객이 굳이 더 높은 금리를 주고 카드사에서 대출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엄연히 업권이 다른 만큼 허용 가능한 업무영역도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이중규제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타업권에는 부담 요인이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7일 판교 카카오뱅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다른 산업권역이 은행업 영업에 들어온다면 은행이 받는 건전성 규제 틀에 동참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시장 참여자들은 당국이 과점체제 해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업권별 규제 개선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서비스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자연스럽게 경쟁을 촉진시키는 방안이 더 현실적이란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서비스는 소비자 관점에서 봐야 하는데, 과점체제 해소를 위해 타업권에 은행업을 허용하겠다는 구상 자체도 굉장히 공급자적(금융기관) 시각인 것"이라며 "타업권에서 은행업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소비자들이 서비스를 이용할지는 다른 문제다. 획기적인 서비스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담대 전문 대출, 중소기업 전문 금융서비스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보다 전문화되고 특화된 서비스(챌린저뱅크)를 키우는 것이 과점체제 해소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규제 완화가 동반돼야 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점체제 해소하겠다고 한번에 모든 걸 다 하려는 접근방식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고, 점진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면서 보다 전문화되고 특화된 스몰라이선스를 다른 기관에 허용하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다"며 "그려면 은행 설립인가를 위한 최소자본금 규모를 낮추는 등의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모든 금융서비스를 은행 브랜드에 따라 원스톱으로 거래하는, 예컨대 A은행에서 예금·대출도 하고 카드도 만드는 식이었는데, 최근에는 비대면·플랫폼이 자리잡으면서 서비스 갈아타기도 쉬워졌고, 보다 다양한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며 "시중은행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분야에 대한 특화은행을 크게 키운다면 새로운 경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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