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폭군과 암군의 경계
[홍승희 칼럼] 폭군과 암군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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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치사에서 군주제는 20세기 이후 사라져가는 정치체제다. 일부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국가의 경우 명목상의 군주, 상징적인 군주이니 전통적 군주제와 견주는 것은 큰 의미는 없고 정통군주제 국가는 한 손에 꼽을 만큼만 남아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도 군주제의 흔적은 정치적 후진국일수록 적잖게 남아있다. 또한 정경분리가 일어나며 민주주의가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분야에서 제왕적 오너십이 발휘되는 사회도 있다. 한국의 재벌문화도 그런 사례의 하나가 될 수 있겠다.

아직 이런 제왕적 문화가 남아있는 구석들이 있기에 특정 지도자에 대해 폭군으로 표현하는 세간의 여론도 일어난다. 특히 쿠데타 세력을 이끈 지도자는 집권기간 내내 그런 평가를 피해가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쿠데타 세력들이 스스로의 행위를 혁명으로 포장하기도 해왔다. 혁명이라고 주장하려면 적어도 계급의 위계가 뒤집어지는 사회시스템의 변동이 수반돼야 하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그런 변화는 없었으니 단지 정치적 수사에 그쳤을 뿐이지만.

요즘도 한국사회에서는 다시 군주제 시절의 왕조 비판에 사용되던 폭군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을 내걸고 집권한 세력이 다시 폭군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현실은 꽤 아이러니다.

문제는 대충 뭉뚱그려 폭군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쓰이지만 역사상으로 보면 폭군과 더불어 암군(暗君)도 적잖이 등장했다. 단지 폭군만큼 그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탓에 그 유명세에서 밀려 잘 기억되지는 못한다.

힘을 가진 측근들에 지나치게 기대어 정적 제거에 집착하는 것은 물론 다수의 국민들을 핍박하고 그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폭군이나 암군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폭군은 난폭하지만 국가적 성장에는 긍정적 평가가 따르는 사례도 존재한다. 왕이 곧 국가인 시대에 왕의 권력을 대외적으로 팽창하려는 욕망을 실현한 결과다.

그에 반해 똑같이 난폭하지만 이기적 권력행사에만 매몰돼 국가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지 못하는 경우는 폭군이라기보다는 암군이라고 부른다. 폭군은 치세 이후에 후유증을 낳을지언정 당대에는 성세를 구가하는 예도 있는데 반해 암군은 치세기간에 이미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거나 쇄락의 전조를 배태한다.

이는 정치 영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국내 굴지의 재벌들이 같은 유형의 흥망성쇠를 겪은 전례들은 충분하다. 정치권력과의 관계에는 매우 유능하지만 국제적 경제, 외교 흐름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해 쇠퇴하다 소멸하거나 자금 능력에 비해 과도한 도박성 투자를 감행하다 쓰러져 재벌체제의 해체를 겪기도 한다.

외환위기와 같은 큰 위기에서 특히 그런 위태로운 경영을 하던 재벌들이 해체의 길로 나아간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경영권을 둘러싼 자녀들의 후계다툼을 벌인 여러 재벌의 모습은 재벌 경영이 왕조시대의 유습을 답습했다는 점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기도 했다.

그런 치열한 후계다툼으로 그룹이 몇 개로 나뉘어도 여전히 국내 굴지의 재벌로 성장한 사례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일부 재벌은 그런 후계다툼의 후유증으로 결국 그룹 해체와 소멸로 결과지어지기도 했다.

또한 변화하는 세계적 니즈를 파악하지 못한 오너들이 그룹에 속한 기업들을 쇠락의 길로 몰아간 사례들도 많다. 정치권력이나 재력이나 그 힘을 독점 소유하기까지는 유능해도 그 이후의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있는 능력은 결여돼 그가 탐하던 시스템의 후퇴를 부른다는 점은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탐구하며 깨우치도록 이끌지 못하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에도 한 원인이 있을 듯하다.

역사 과목은 역대 임금의 이름이나 연대 외우기에 치중해 흥미를 빼앗아가고 또 국영수에 매몰된 입시교육에 떠밀려 교육현장에서는 변방에 내쫓겨버린 현실이 만들어낸 결과다. 물론 해방 이후 70년이 넘도록 식민사학의 굴레를 벗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금도 일본 사학계의 국수적 논리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역사학계가 자초한 비극이기도 하다. 시대를 역행하는 폭군도 암군도 우리 미래를 어둡게 할 뿐임을 가르칠 교육은 지금 우리 사회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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