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환율전쟁中] 경기침체 우려에 긴축 동조화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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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I 둔화에 '킹달러' 제동···원·달러 환율 하루새 60원↓
주요국 통화 반등했지만···주요국들 경기침체에 주저
"내년 초 긴축 동조화 끝나고 통화정책 차별화 될듯"
미국 달러화 (사진=픽사베이)
미국 달러화 (사진=픽사베이)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철옹성 같던 '킹달러' 위세가 한풀 꺾였다. 소비자물가가 둔화되면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동력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압도적 금리 우위에 기반한 달러 강세는 약화됐고, 억눌렸던 주요국 통화 가치는 일제히 반등했다. 말 그대로 역환율전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CPI 둔화로 킹달러 기조에 제동···'눈치게임' 시작

올 한해 역환율전쟁은 달러의 일방적 승리로 점철됐지만, 10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둔화와 함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달 초 112.86까지 치솟았던 달러인덱스는 지난 15일 105선까지 추락했다. 원·달러 환율(종가기준) 역시 지난달 말 1424.3원에서 지난 11일 1318.4원으로 105.9원이나 하락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환율이 59.1원 감소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는 그간 달러 강세로 과도하게 쏠렸던 롱포지션들이 CPI 둔화와 동시에 손절매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미 CPI 상승률은 올해 6월 9.1%를 기록하며 41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후 7월 8.5%로 둔화됐지만, 8월 8.3%, 9월 8.2%로 정체됐다. 그러나 10월 들어 7.7%로 크게 둔화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그간 킹달러를 떠받치는 핵심 동력은 물가 안정을 우선시한 연준의 고강도 긴축이었다. 그러나 물가 상승세가 크게 둔화되면서,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완화될 것이란 전망이 시장 내 확산됐다.

실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에 반영된 12월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은 10일 56.8%에서 11일 85.4%로 급등했다. 연준의 최종금리 수준도 기존 5.25%에서 5%로 하향됐으며,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채 2년물 금리는 4.328%로 전일 대비 6.52%나 급감한다.

반면 주요국 통화는 일제히 반등했다. 이달 초 유로당 0.97달러까지 떨어졌던 유로화 가치는 CPI 발표 이후 1.04달러선까지 회복했다. 영국 파운드화 역시 4일 파운드당 1.11달러선에서 1.19달러까지 상승했으며, 달러당 152엔까지 절하됐던 엔화는 138.8엔까지 절상했다.

'킹달러'라는 철옹성에 균열이 생기자 억눌려 있던 주요국 통화 가치가 날아오른 것이다. 덕분에 달러의 압도적 우세였던 역환율전쟁도 새로운 분기점을 맞게 된다.

그러나 미 CPI 발표 이후 약 2주가 지난 현재, 달러인덱스는 105.8선에 머물고 있다. 유로화는 유로당 1.04달러, 파운드화는 파운드당 1.21달러에 머무는 등 지난 11일과 비교했을 때 큰 변화가 없다. 킹달러의 붕괴로 승기를 잡아야할 주요국들이 어째서 소극적 모습을 보인 것일까. 그 원인은 경기침체 우려다.

◆"버틸 체력이 없다"···경기침체 앞에 백기 든 주요국들

역환율전쟁의 핵심은 자국 통화가치의 상승이다. 공격적 금리 인상을 통해 자국 화폐의 가치를 높이면, 수입물가를 낮추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를 통해 자국 내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게 역환율전쟁의 개념이다. 

대표적으로 미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을 예로 들 수 있다. 미 연준은 올해 3월 CPI 상승률이 8%를 돌파하자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불과 9개월 만에 3.75%포인트라는 기록적 상승세를 보인다.

이런 행보가 선제적으로 반영된 결과, 유로화 약세 흐름과 함께 2월 5.9%였던 유로존 물가 상승률은 3월 7.4%로 급격히 확대됐다.

물가상승세가 이어지자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7월 11년 만에 첫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후 9·10월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등 고강도 긴축을 단행, 미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문제는 고강도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통상 금리가 상승하면 소비가 위축돼 물가가 하락한다. 반면 이자부담이 확대되고 기업들의 자금사정과 투자가 위축돼 경기둔화로 이어진다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금리인상이 이어질 경우 올해 9월부터 내년 연말까지 기업들의 연 이자부담액이 최소 16조2000억원, 가계는 17조4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출 연체율도 0.27%에서 0.555%로 두배 이상 높아지며, 한계기업과 취약계층의 부실위험도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고강도 긴축을 선제적으로 단행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파급력은 더욱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세계 경제성장률을 올해 3.1%, 내년 2.2%로 전망했다.

이 중 우리나라의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은 2.7% 1.8%로 기존 대비 0.1%포인트, 0.4%포인트씩 하향 조정됐다. 그러나 미국과 유로존의 내년 경제성장률은 둘다 0.5%로 전세계 평균치를 크게 하회하는 수준까지 악화됐다.

OECD는 보고서를 통해 "긴축적 통화정책과 높은 기준금리,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에너지 가격, 약한 실질 가계소득 성장세와 신뢰도 하락은 전세계 국가의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며 "특히 미국과 유럽의 성장세는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물가 보단 경기···종착점을 향해 가는 역환율전쟁

이처럼 글로벌 경기 둔화 흐름이 가시화되면서, 시장 내에서는 올해 말에서 내년 초까지 미국과 EU를 비롯한 전세계 주요국들이 금리인상을 마무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15일 글로벌 경제 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일본·터키·러시아 등 일부를 제외한 20개 이상의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다음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폭을 0.25~0.5%포인트로 조절할 것이라 예측했다. 특히 경기침체 우려가 큰 미 연준과 ECB는 다음달 금리 인상폭을 0.5%포인트로 좁힐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중앙은행 중 통화정책을 가장 선제적으로 운용한다고 평가받는 호주중앙은행(RBA)의 행보는 해당 관측을 뒷받침한다.

RBA는 지난 5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이후, 6월부터 9월까지 기준금리를 4회 연속 0.5%포인트 인상한 바 있다. 그러나 RBA는 7.3%라는 고물가 속에서도 10·11월 금리인상폭을 0.25%포인트로 축소했다.

이는 고금리 기조 속 낮아진 경제성장률 때문으로 풀이된다. RBA는 올해 호주의 경제성장률을 3%로 기존 대비 0.25%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또한 2023년과 2024년에도 각각 1.5%로 예상하는 등 경기침체 우려가 불거지자,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췄다는 평이다.

현재 금융권에선 내년 1분기 이후 주요국 금리 수준이 충분히 제약적 수준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물가 상승률 둔화 흐름도 뚜렷해질 것이며,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긴축강도는 점차 약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시장 전문가들은 내년 주요국들의 통화정책은 올해처럼 경쟁적 금리 인상 기조가 아닌 각국의 물가상황, 부채 규모, 재정건전성 등에 따라 독립적 모습을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말 그대로 역환율전쟁의 끝이 머지않았다는 평가다.

최제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그 결과 소비와 투자심리는 빠르게 꺾였고 경기 침체 우려도 확대됐다"며 "통화정책이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고려하면, 내년 전세계 경제 부진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공격적 금리인상을 단행한 중앙은행들은 물가 둔화가 가시화되고, 경기하강 조짐이 명확할수록 긴축 고삐를 늦출 것이다. 특히 미국만큼 경기 여건이 좋지 못한 유로존과 영국은 금리인상을 계속하기 어려운 환경일 것"이라며 "결국 내년에는 긴축 동조화가 아닌 각 국가의 경제 환경에 따라 통화정책의 차별화가 진행될 공산이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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