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안펀드, 여전채 매입 시작했지만···중소형사엔 '그림의 떡'
채안펀드, 여전채 매입 시작했지만···중소형사엔 '그림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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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 매입 후 여전채 신용스프레드 확대
지원 가이드라인도 불명확···기업 혼란 가중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5대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5대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5대 금융지주는 자금시장 안정화를 위해 올해 말까지 95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단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금융당국이 채안펀드를 통해 여신전문금융채(여전채) 매입을 시작한 가운데 까다로운 조건 탓에 지원이 절실한 중소형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들은 여전히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회사채를 우선 지원하겠다는 채안펀드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가 채권 회수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안펀드가 AA- 등급을 중심으로 여전채 매입을 시작한 가운데 규모가 더 작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여전사들의 자금조달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채안펀드는 지난 3일과 4일 신한캐피탈이 발행한 300억원 규모 여전채 3년물과 KB캐피탈이 발행한 400억원 규모의 여전채 3년물 등을 매입했다. 두 금융사 모두 대형 금융지주사 계열이면서 채권 신용등급은 AA-로, 주요 캐피탈사 가운데선 우량한 곳으로 분류된다.

채안펀드가 본격 가동했지만 여전사들의 자금난은 여전하다는 진단이다. 채안펀드가 여전채를 매입한 직후인 4일 여전채 AA-등급 3년물의 신용스프레드(국고채와의 금리차)는 216bp(1bp=0.01%p)로 전일(214bp)보다 확대됐다.

AA- 뿐만 아니라 'AAA'~'BBB-'에 해당하는 모든 여전채 3년물의 신용스프레드가 전일보다 확대됐다. 신용스프레드 확대는 채권 발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자금조달 환경이 위축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올해 초(1월 3일)와 비교하면 여전채 전 등급에서 신용스프레드는 최대 3.4배까지 뛰었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여전채일수록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 채안펀드마저 우량 여전채를 중심으로 운용되면서 여전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채안펀드는 기업이 채권 물량에 대해 50% 이상의 수요를 먼저 확보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현재 자금시장 돈줄이 말라붙어 초우량(AAA 등급) 한전채에서도 미매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등급이 더 낮은 여전사들 입장에선 채안펀드 지원조건을 맞추기 요원한 상황인 것이다.

더욱이 지원을 받은 신한캐피탈과 KB캐피탈의 경우 대형 금융지주 계열사란 점에서 채안펀드가 과도하게 보수적으로 운용되는 것 아니냔 지적도 있다. 앞서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는 지난 1일 자금시장 안정화를 위해 올해 말까지 95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그룹 계열사에 10조원의 자금을 공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형 금융지주사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신한·KB캐피탈보다 자금조달이 시급한 여전사에 채안펀드가 투입됐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이 어려운 기업을 지원하는 것보단 향후 회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채안펀드를 운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캐피탈업계 관계자는 "채안펀드 지원을 받기 전에 이미 50%의 투자자를 모집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량한 곳이라는 건데,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을 지원하는 게 채안펀드의 취지라면 실효성이 당연히 떨어지지 않겠나"라며 "어떻게 보면 죽어가고 있는 기업들 말고 그나마 살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에 집중을 하겠다는 건데, 그 의미는 정부가 회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안펀드 지원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아 기업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자금조달을 위해선 채권 규모와 발행 만기 등의 사전 조달계획이 중요하지만 채안펀드 지원 규모 등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오히려 수요예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국내 대기업 채권담당 직원은 "안 그래도 투자자를 못찾아서 시장이 이렇게 된 건데, 투자자를 찾아야지만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난감한 상황"이라며 "더 문제는 채안펀드 지침이 명확하지 않아서 어느 때는 회사별 한도가 다 차서 지원을 못해준다고 했다가 또 다른 직원이 문의해보니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또다른 채권업계 관계자는 "기업 채권 미매각 나서 물량을 못맞추게 되면 증권사들도 그걸 떠안을 수밖에 없는데, 시장에서 투자자 모집 자체가 어려워서 증권사들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한다는 3조원 캐피탈콜이나 제2 채안펀드도 실제 지원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을 거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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