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 이어 DB생명 '콜옵션' 연기···레고랜드 후폭풍, 금융권으로 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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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채권시장 탓에 '일정' 잇달아 차질
당국 "시장 영향 없다" 진화에도 불안 여전
금융지주사 내년 상반기 수천억 규모 '만기'
흥국생명 사옥. (사진=서울파이낸스DB)
흥국생명 사옥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레고랜드로부터 촉발된 채권시장 불안이 당국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상환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미루기로 하는 등 금융권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콜옵션 미행사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만기 때 상환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여서 평판 하락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현재 자금시장 경색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특히, 자금시장 한파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기일이 내년 상반기까지 차례로 예정돼 있어 시장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흥국생명은 오는 9일로 예정된 5억달러(약 7118억원)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새롭게 채권을 발행해 기존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하는, 차환발행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었으나 최근 채권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또다른 생명보험사인 DB생명도 오는 13일로 예정됐던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 행사 기일을 내년 5월로 변경하기로 투자자들과 협의했다.

신종자본증권은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만기가 통상 30년 이상으로 긴 채권을 말한다. 기업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때 5년 혹은 10년 콜옵션(조기상환) 조건을 부여한다. 채권 자체의 만기는 30년 이상이지만 발행 후 5년 혹은 10년이 지난 시점에 투자자들에게 투자금과 이자를 돌려주겠다는 의미다.

그동안 콜옵션 행사는 암묵적인 관행으로 여겨져 왔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업의 자금조달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전체 자금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어서다. 실제 국내 금융사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2009년 우리은행의 달러화 후순위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에도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자본력 우려로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한 바 있다.

문제는 흥국·DB생명의 이번 콜옵션 미행사는 자금시장 경색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이들 보험사가 콜옵션을 행사하려면 해당 규모만큼의 채권을 새로 발행해야 한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침체, 금리상승, 레고랜드 ABCP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최근 자금시장에서 돈줄이 완전히 말라붙자 새롭게 채권을 발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 흥국생명의 경우 콜옵션 미이행에 따라 기존 신종자본증권의 금리가 4.475%에서 6.7%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2%p(포인트) 이상의 금리를 감수하고도 기존 채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국내 한 대기업 채권담당 직원은 "흥국생명 사건이 현재 위축된 채권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사실 이번 사건은 현재 채권시장에서 발생된 문제들이 종합된 결과인 것이지 어떤 유의미한 변곡점이 될 정도로 중대한 건 아닌 것 같다"며 "시장이 이미 심하게 위축된 상태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흥국생명 관계자도 "최근 자금시장이 워낙 안 좋아 투자자들을 새로 모집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고, 금리나 달러 부분에서도 상환을 했을 때 회사에 무리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현재로선 금리를 2%p 더 주고 기존 신종자본증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콜옵션 미행사가 단순히 해당 기업의 자본력 부족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닌, 자금시장 전반의 경색에서 비롯된 만큼 또다른 콜옵션 미행사가 발생할 여지는 충분하다. 현재 주요 금융지주사 가운데 내년 수천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이 도래하는 곳은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이다.

신한금융의 경우 △2023년 4월 13일 신종자본증권 1350억원 △2023년 8월 13일 외화 신종자본증권 5억달러(약 7118억원) △2023년 8월 29일 신종자본증권 4000억원과 신한은행 △2023년 10월 15일 신종자본증권 2000억원 등이다. 하나금융은 △2023년 3월 9일 신종자본증권 1920억원 △2023년 10월 26일 2960억원 등이다.

한 금융그룹 관계자는 "당연히 2금융권인 보험사에 비하면 금융그룹의 자본력이나 신용도가 훨씬 좋기 때문에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현재 채권시장쪽에서는 올해보다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물량들에 대한 고민이 훨씬 크다고들 한다. 시장 경색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고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적극적인 진화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흥국생명이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상환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데 이어 DB생명도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일정을 연기한데 대해 "해당 신종자본증권 투자자는 소수고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아니므로 채권 유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없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날 DB생명의 콜옵션 행사 연기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내고 "DB생명의 신종자본증권은 해외 발행이 아닌 국내 발행건으로 해외 투자자와 관련이 없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DB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 행사 일정 등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향후에도 시장상황을 지속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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