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사람, 경제 그리고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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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패권 유지를 위해 인권을 무기화해온 미국은 이제 그것만으로는 힘이 달리는 모양이다. 최근의 인플레 감축법처럼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경제적 이익수호에 나선 것이 이를 방증한다.

물론 그동안에도 미국은 관세나 금융 등 경제적 수단을 통해 무역상대국들을 통제하고자 했지만 이번 인플레 감축법은 좀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통제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지지율 하락세에 구석으로 몰린 바이든으로서는 중간선거가 코앞에 닥쳐 보다 극적인 효과를 얻으려는 무리수를 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초강경 수를 들고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의 힘이 약화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직 미국에 전면적으로 맞설 나라는 없지만 이제까지 미국이 기침만 해도 전 세계가 몸을 사리던 구도에는 분명한 균열이 생겼음을 미국 스스로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인권을 기치를 내걸고 적대국가나 위협적으로 성장한 국가들을 옥죄곤 했다. 미국민의 정서에 부합해서이기도 하겠으나 그보다는 전 세계가 미국적 인권 기준에 맞추기를 강요해왔다. 그로 인해 모든 인권 후진국이 대상이 되기보다는 미국에 맞서려는 국가들이나 명목상 우방국이라도 길들이기 원하는 국가들의 인권이 집중적으로 타겟이 됐다.

최근 들어서는 그 대상이 분류상 군사적 위험국가에서 경제적 위협이 되는 나라로 명확하게 바뀌고 있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미국에 위협이 되는 모든 나라에 같은 패널티를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인플레 감축법을 홍보하면서 '한국'을 처음 언급하며 몇 개 국가를 콕 짚어 피해를 줬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한국이 최근 몇 년새 급격한 기술발전 및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함에 따른 경계심이 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재자의 특징 중 하나는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미국은 그와 동일하게 그동안 2위 국가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짓밟아왔다. 이전까지는 미국의 여러 파워 가운데서도 2위국 징치에는 주로 금융이라는 수단을 써왔으나 유일하게 금융만으로는 꺾어버릴 수 없는 중국이라는 대상이 나타나면서 조바심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과거에는 하나의 타겟 국가에 집중적인 소위 원점타격 방식으로 공격을 가했다면 글로벌경제시대의 대두에 따라 꾸준히 감소해온 자국내 생산기반을 되살리기 위해 트럼프 이후 바이든까지 민주, 공화나 당을 떠난 미국 정부의 일관된 공격이 우방이나 적성국을 가리지 않고 공격을 감행한다는 점이다. 이런 미국의 정책적 선택은 대중국 단일 대오를 요구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구상이 크게 힘을 얻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정책들이 이렇게 변화하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들은 향후 경제적 성장이 지체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지난해까지 비교적 그런 미국 변화에 잘 적응하고 케이스별로 적절한 대응을 해왔으나 올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래 과거의 관계로 돌아가려는 수구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불과 반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몇 차례 외교적 실패를 거푸 보여주고 있다.

통상과 외교의 연계가 매끄럽지 못하면 미국을 상대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이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매 사안마다 국가적 역량을 결집시키는 노력이 요구되지만 최근 보여주고 있는 정부의 행동은 부처 간 권력재편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쪽에 줄서기 하는 방식의 외교나 외교력이 실종된 통상정책을 펴기에는 한국의 경제나 기술 수준이 매우 커졌다. 양아치들의 세계에서도 실력이 커진 똘마니는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면 보스의 사냥개로 토사구팽 당하고 이런 권력의 이치는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국력 순위는 아직 2위국을 토벌하려는 미국의 최우선 견제대상에 이르지 못했지만 야구에서 1, 2루 주자들의 도루를 막기 위해 투수가 견제구를 날리듯 잦은 견제를 당할 위치에는 올라섰다. 이런 한국이 '무조건 충성'을 외친다고 미국의 견제를 피할 수는 없다.

실상이야 어떻든 일본의 아베 외교가 그런 모습이었지만 미국의 명령과 같은 요구로 갈팡질팡하게 만든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일본이 통상정책에서는 나름의 잇속을 잘 챙겼던데 반해 지금 한국은 아베의 그림자를 따라가면서도 제대로 이익을 챙기려는 의지가 부족해 보여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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