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신흥국, 시나리오 기반 사전적 정책방향 제시 필요"
이창용 "신흥국, 시나리오 기반 사전적 정책방향 제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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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의 세션 패널 토론자로 참석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신흥국에 대한 교훈' 주제 발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7차 동아시아·태평양지역 중앙은행 협력체(EMEAP) 총재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7차 동아시아·태평양지역 중앙은행 협력체(EMEAP) 총재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서울파이낸스 유은실 기자] 국제경제 심포지엄인 '잭슨홀 미팅'에 발표자로 나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대외 불확실성에 큰 영향을 받는 신흥국이나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출구전략의 유연성을 크게 제약하는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가 이상적인 정책수단 되기 어려워 보인다"며 "앞으로 시나리오 기반의 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와 같은 보다 정교한 정책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총재는 27일(현지시간)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의 세션(The Outlook for Policy Post-Pandemic)에서 패널 토론자로 참석해,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해 펼친 양적완화와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forward guidance, 사전적 정책방향 제시)에 대해 발표했다. 잭슨홀 미팅은 전 세계의 통화정책과 관련된 주요 발언이 나오는 자리로, 올해 주제는 ‘경제와 정책에 대한 제약 조건 재평가(Reassessing Constraints on the Economy and Policy)’다.

먼저 그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양적완화와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로 정의했다.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란 미래의 정책 경로에 대한 정성적인 설명이나 특정 시기·임계치에 기반한 포워드가이던스를 의미한다. 예컨대 과거 연준(Fed)의 "적어도 실업률이 6.5% 이상으로 유지되는 한" 등의 조건 하에서 "저금리 장기화"를 시사한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 총재는 선진국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효과에 대해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자산을 큰 폭으로 확대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정책은 대체로 장기금리를 낮추고 경기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면서 "그러나 이 기간 포워드가이던스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과도하게 단순화되면서 경제 주체들이 대내외 불확실성을 과소평가하게 됐고 중앙은행이 출구전략을 구사하기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최근 주요 중앙은행이 포워드가이던스를 중단한 것도 커뮤니케이션의 과도한 단순화 문제와 중앙은행이 기존 포워드가이던스를 고수하려고 하면서 생기는 정책 경직성 등이 단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7월 FOMC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동안 통화정책에 대해 명확한 힌트를 주던 기조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데이터를 보고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파월 의장은 이 자리에서 미국이 중립금리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하며 "명확한 포워드가이던스를 제시하지 않은 채 CPI, 실업률 등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창용 총재는 이번 발표를 통해 신흥국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대해 평가했다. 그는 "신흥국도 선진국보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중 대규모 재정 부양과 함께 양적완화를 도입했다"며 "그간 금기시되어온 국채 직접 인수 등을 동원해 대규모의 확장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폈는데도, 통화가치 하락이나 자본 유출의 발생 없이 금융시장이 안정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재는 신흥국이 거둔 긍정적인 효과가 코로나19 위기라는 공통의 충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임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진국이 먼저 더 큰 규모로 유동성을 공급했기 때문에 신흥국도 초확장 정책에도 환율상승과 같은 불이익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 

이창용 총재는 "향후 신흥국이 홀로 저성장 및 저물가 위험에 직면해 유사한 비전통적 정책을 시행할 경우에도 같은 결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한국은 물론 중국, 태국과 같은 아시아 신흥국의 급속한 고령화를 고려하면 이들 국가가 장래에 저물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럼에도 신흥국의 경우 대외 불확실성이 커 급격한 경제여건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더욱 중요한 것이 사실"이라며 "출구전략의 유연성을 크게 제약하는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가 아닌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 즉 시나리오에 기반한 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경제의 향후 경로를 매우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분석체계를 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낙관적일 수 있지만, 신흥국이 각자의 여건과 필요에 최적화된 비전통적 정책수단을 갖추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분석 역량, 경험의 축적, 폭넓은 연구가 필요하다"며 "지금과 같은 때야말로 이를 위해 투자할 시기"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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