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출발기금' 시행 전부터 삐걱···빚탕감 논란에 지자체 반발까지
'새출발기금' 시행 전부터 삐걱···빚탕감 논란에 지자체 반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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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30조 새출발기금 세부 방안 이달 중 발표
당국 해명에도 금융사 팔비틀기·도덕적해이 논란 지속
서울 한 은행 영업점 모습 (사진=박시형 기자)
서울의 한 은행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이 시작 전부터 과도한 빚 탕감,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가 과도한 우려라며 연일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논란은 금융업계를 넘어 지방자치단체 등으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정부 해명에도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과거 각종 '배드뱅크'를 운영하면서 발생했던 문제들이 되풀이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등장했던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이 과도한 부담을 지거나 신용불량자가 오히려 증가하는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 바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14일 발표한 '민생안정을 위한 금융부문 프로그램'에 따라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 세부 계획을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새출발기금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배드뱅크(Bad Bank·부실채권전담처리은행)'다. 캠코가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대출(부실 채권)을 은행으로부터 매입한 후 조정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캠코는 매입한 대출의 상환만기를 최대 20년까지 늘려주고 금리를 낮춰줄 계획이다. 또 해당 대출 중 90일 이상 연체한 장기 부실차주에 대해 최대 90%까지 원금을 감면해줄 계획이다.

이같은 계획을 두고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금융권에서 반발 조짐이 일고 있다. 지자체는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손실이 커질 것을 우려한다. 지역 신보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에 보증을 제공하는데, 새출발기금이 지역 신보가 보유한 구상채권을 헐값에 매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또한 새출발기금 운영으로 기존 채무자들이 일부러 빚을 갚지 않는 모럴해저드가 만연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민간 금융회사 출연 없이 새출발기금을 운영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지만 과거 배드뱅크들이 그랬듯 운영 과정에서 금융회사 '팔 비틀기'가 수반될 것이란 게 업계 시각이다.

실제 역대 정부 배드뱅크는 모두 캠코와 금융회사 공동 출연을 통해 설립됐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한마음금융'과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신용회복기금', 2013년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 등을 위해 금융권은 수십억~수천억원의 출연금을 내야 했다.

신용카드 대란을 수습하기 위해 설립된 한마음금융에는 620여개 금융회사가 참여해 다중채무자의 빚 30~50%를 감면해줬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출범한 신용회복기금은 3개월 이상 1000만원 이하 연체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줬다. 당시 은행들은 캠코로부터 받아야 했던 부실채권정리기금 이익잉여금 약 7000억원을 반납하는 방식으로 출연에 동참했다. 이후 2013년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은 4년간 58만명의 빚을 탕감해줬다.

배드뱅크 운영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시각은 경제가 어려울 때 대출로 돈을 번 금융기관들이 부실 대출자에 대해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 정부의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민생안정대책 관련 브리핑에 나설 때마다 "부채 문제의 일차적인 책임은 금융회사에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부실차주 채무조정 과정에서 금융권은 물론 지자체가 과도한 부담을 질 것이란 우려가 계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덕적해이를 방지할 뚜렷한 해법도 없다. 노무현 정부 배드뱅크였던 한마음금융의 경우 2004년 출범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면서 당시 1%대를 유지하던 신용불량자 증가율이 2% 중반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정부가 제시한 빚 탕감 기준에 맞춰 연체일을 늘린 대출자들이 대폭 늘었다는 의미다.

국민행복기금의 경우 출범 직후 채무조정을 받은 대출자 18만명 가운데 7%에 달하는 1만2000명이 1년 만에 또다시 채무불이행자가 됐다는 분석자료도 있다. 빚 탕감을 되풀이하는 것보다 도덕적해이를 막기 위한 패널티와 확실한 재기 지원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발표될 때마다 도덕적해이 문제는 불가피했다고 정부가 해명하고 있는데, 그 얘긴 결국 같은 문제가 매번 반복됐다는 것"이라며 "더 큰 리스크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는 하나, 두번은 없을 것이란 확실한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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