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미국의 선택과 그 파장
[홍승희 칼럼] 미국의 선택과 그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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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그 패권을 유지하는 방식은 최근 크게 바뀌고 있다.

군사력의 확대를 경계하면서 무력을 금융지배력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물론 패권 유지를 위해 일정 수준의 해외 주둔군은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겠지만 전장에 미국군을 직접 투입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유지하려는 스탠스 또한 그런 경향성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영향력의 약화를 막기 위한 도구로서 미국이 가장 강점을 지니고 있는 달러 파워를 앞세운 금융지배는 더 노골화하고 있다. 이전에도 미국의 금융지배가 막강했지만 현재에 이르러 그 정도는 군사력을 금융의 뒤로 감추는 형국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의 마찰을 일으킬 때는 처음 세계 최대 소비국으로서의 미국의 힘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대뜸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부터 시작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상황이 서로 다르고 산업형태도 차이가 크니 그럴 수 있다지만 실상 오랜 기간 미국과 서방세계의 각종 경제제재를 겪은 러시아에 더 이상 사용할 패가 없어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미국은 이제 군사력보다는 금융지배력을 주된 파워로 앞세우며 단지 미국의 향후 세계전략 방향성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우방국들과의 금융거래에 있어서도 미국 금융에 일방적 부담이 될 통화스왑 대신 미국 국채를 담보로 한 금융여신 형태의 FIMA로 전환하는 것을 원칙적 입장으로 정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FIMA는 미국의 국채 수요를 늘리면서 동시에 시장 안정화도 도모할 수 있는 달러 패권국 미국으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단지 다른 나라들은 자국 통화 및 외환보유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야 하는 상당히 일방적인 거래라는 점이 당장 미국의 패권유지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미국의 금융패권에 대한 반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미국의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 중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금융패러다임 찾기에 돌입했다. 그 성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이런 중`러의 움직임에 당장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급한 비유럽 국가들이 먼저 동조하고 나서면 미국이 원하는 진영대립 구도에 균열을 부를 수 있다.

당장 미국 국내 사정이 급해지다보니 대외관계에서 종종 조급증을 보이며 서둘러 진영대립 구도를 만들어 나가려 하지만 쉽사리 미국의 구상대로 그림이 당장 완성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은 동유럽의 위험 확산 우려 때문에 EU가 미국 입장에 온전히 동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파른 인플레이션에 더해 장기적인 경기침체까지 겪게 된다면 그런 결속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게다가 미국의 파워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야 하는 아시아지역이 과연 유럽만큼의 대미 충성도를 보여줄지는 더욱 아리송하다.

당장 인도 같은 경우 러시아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정적 여력이 없는 국가들은 미국의 글로벌 금융정책이 지금처럼 강제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 힘에 부쳐서라도 미국 진영으로부터 탈락할 여지가 충분하다.

이는 미국이 재정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을 반대진영으로 몰아가는 최악의 그림으로 변하게 될 위험성을 높인다. 중국 한 나라만 몰아붙일 때는 미국이 봉쇄전략을 펴더라도 먹힐 소지가 있었지만 러시아와 중국을 하나의 진영으로 묶어줌으로써 미국 스스로 버거운 상대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미 해를 넘겨 리라화 폭락에 시달리던 터키는 물가상승률이 70%를 넘어섰다는 경악할 상황으로 내몰리며 내부 정치적 불만의 돌파구를 대외적 전쟁에서 찾으려는 게 아닌가 싶은 움직임을 보인다.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성이 높은 나라들이 많은 중남미의 경우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정을 보이던 국가들까지 경제적 위기가 커지며 사회 전반적 위험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여러 요소들로 볼 때 이번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그에 뒤따를 세계 경제의 침체는 아마도 과거 금융위기 때보다 2~3배 더 긴 시간 고통스럽게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과연 어느 나라가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을 할지, 우리 코가 빠진 상황만 아니라면 흥미롭게 지켜보겠으나 우리에게 그런 여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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