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도체 인재 양성, 이대론 안 된다
[기자수첩] 반도체 인재 양성, 이대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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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쟁은 총이 아닌 반도체가 하는 것."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한 경제단체 간담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전 세계적인 패권 경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말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 산업을 국가 경제성장 주도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산업계는 물론, 국가 차원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지원 정책들이 논의되고 추진됐지만 가장 핵심이자 시급한 과제는 바로 반도체 인재 확보다. 반도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두뇌, 즉 우수한 인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는 수년간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려 왔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 등 반도체 제조사들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등 국내 반도체 인력은 수요보다 1500여명 이상 부족한 것으로 파악된다. 향후 10년간 누적 부족 인력이 3만명에 달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한 듯 최근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의 첨단산업을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위해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를 예고하고 나섰다. 반도체 수출이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글로벌 투자 경쟁에 불이 붙은 반면 업계의 인력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극적인 인재 양성 의지를 보이는 것을 환영할만하다.

다만 그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 대학 모두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당 정책이 수도권 대학의 비대화와 지방 대학의 소멸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정책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차 문제도 있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 열린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 이대로 괜찮은가' 주제 정책토론회에서 현재 정부 추진 전략 문제점으로 △학생 배출과 사회 수요의 불일치 △수도권 정원 조정 등 제도와 법률 변경 필요 △학부 졸업생 배출에 4~6년 소요 △석·박사 배출에 10년 소요 등을 꼽으며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가능한, 쉬운 전략부터 먼저 추진해야 한다"며 "지방 국립대는 TO(정원) 제한이 없으므로 전국 국립대학에 반도체 학과를 설립해 지역의 우수 인재를 배출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단순 증원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는 만큼 보다 세밀한 인재 양성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미래 첨단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 산업계 애로사항 및 현황 등에 대한 파악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미래 반도체 산업에서는 기초 과학(수학, 물리 화학, 재료, 기계 등)은 물론,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컴퓨터 구조, 데이터 과학, SoC 설계, 디지털 설계, 회로 설계, 소자물리 등을 모두 아우르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토론회에서 "반도체산업 인력 및 부족률이 광역지역별로 격차가 클 뿐 아니라 직무, 학력, 전공 등에서 상이하다"며 반도체 인력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도체는 흔히 '산업의 쌀'이라 불릴 정도로, 국가 핵심 산업이다. 반도체는 코로나19 시국 속에서도 우리나라 경제를 든든히 받쳐준 핵심 산업이며 미래 안보 산업이기도 하다.

윤 정부는 연일 '열공(열심히 공부)'에 나서며 반도체 산업을 강조하고 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 초격차 실현을 위해 각 부처에 산업 육성 방안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다만 정부는 반도체 인재 부족 문제가 일회성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가 디지털 경제 구조로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인한 시대적 변화라는 것이다.

단지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인력난인 만큼 단기적이고 기술적인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단순 '숫자 맞추기식'의 일차원적 접근이 아닌 시스템 전체를 아우르는 체계적인 인재 육성·관리 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졸속으로 추진해선 안 된다. 업계·학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치력을 발휘해 묘안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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