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흥과 한 그리고 대선
[홍승희 칼럼] 흥과 한 그리고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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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적 정서로 한(恨)을 꼽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한과 더불어 흥(興)이 짝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한국적 정서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다. 이 한과 흥은 호흡과 같다.

즉 흥이 호라면 한은 흡이다. 들숨과 날숨처럼 한을 끌어안고 삭인 후에 흥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것이니 흥도 한도 어느 한쪽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흥과 한은 이제껏 개개인에게만 나타나는 양상으로 보았지만 요즘 대한민국을 보고 있으면 이 흥과 한이 국가 단위 혹은 민족 단위로도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간 한이 쌓이고 쌓였던 역사를 뒤로 하고 이제는 흥이 한껏 발현되는 시대를 맞은 듯하다.

이처럼 흥이 폭발하니 국운 또한 상승한다. 이 흥의 폭발이 시작된 시점은 아마도 월드컵 응원 열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당시 우리 스스로도 내재된 흥이 이 정도인가 싶어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흥이 오르니 스스로를 비하하던 사회문화가 바뀌고 자신감이 고양된다.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국가적 자존감으로 발전한다.

흥이 긍정적 성질을 띠고 있지만 이 흥도 적절한 관리, 절제가 필요하다. 예로부터 아이들이 흥이 넘치다보면 끝내 ‘얄이 난다’고 경계했다. 얄이 난다는 말이 국어사전의 설명으로는 민간에서 쓰이는 의미를 알 수 없지만 민간의 용례로 볼 때 스스로 흥이 넘쳐 주체하지 못하고 힘에 부치는 지경까지 이르는 현상을 말한다. 이 경우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국운이 상승하다보니 젊은 네티즌들의 글을 보면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까지는 좋지만 종종 주변국들을 지나치게 비하하는 양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은 한걸음 뗄 때마다 조심 또 조심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국민들의 이성을 갈고 닦는 기풍이 필요한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우리가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이기만 했던 한을 흥으로 풀어내는 국운 상승기에 이르렀으니 이 상승의 기운을 잘 키워나가야 할 때다. 지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그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이 상승의 기운을 더 북돋을 수도 있고 꺾어버릴 수도 있는 갈림길에 섰다.

역사적으로 국민들 속에 흥이 넘치는 시기는 정부의 억압이 줄고 개혁이 진행되며 지도층은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었고 그 기운이 꺾이는 순간 국운 또한 기울었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참혹한 7년 전쟁을 치르고도,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고도 유지됐던 조선왕조가 정조시기의 정치개혁과 문예부흥의 기운을 정조 사후 한순간에 죽여 버린 결과 세도정치의 폐해는 극단적으로 커졌고 결국은 제국주의가 발호하던 시기를 견뎌내지 못한 채 그 긴 역사 속에 지켜왔던 국가정체성을 잃고 식민지로 전락해버렸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계승한 이 땅의 식민사학은 우리 민족이 내내 비천한 역사를 이어온 것처럼 우릴 가르쳤다. 그러나 적어도 17세기까지 우리는 전 세계 기준에서 꽤 잘 사는 나라였다.

지금 기준에서 보자면 계급질서가 강했던 당시 대다수 평민과 천민, 노비들은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당연히 엄청나게 가난했지만 당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그보다 더 가난했다는 것이다. 왕조가 오래 지속되다보니 양반 기득권층은 부를 대물림하고, 착취당하던 평민들은 납세 능력이 없도록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팔아 노비로 전락하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 또한 심각한 양극화를 겪고 있다. 이런 불균형이 지속되면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다.

희망을 잃은 중산층, 빈민층이 늘다보면 그 사회는 역동성을 잃게 된다. 다시 사회적 한이 쌓이는 부정적 기운이 사회를 지배하게 될 위험성이 커진다.

지금의 긍정적 기운을 오래 유지하고 사회가 지속적인 성장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 대선 후보들 중에는 이런 문제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 보이는 유력후보도 있어서 걱정스럽다.

정치적 입장이 어떻든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는 제발 국운의 상승 기운을 꺾지 않고 잘 지켜나갈 지도자가 선택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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