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중심이 된다는 것
[홍승희 칼럼] 중심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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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의 중심지는 현재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이다. 2차대전 이전까지는 유럽이 세계 문화를 주도했지만 역사 속에서 늘 그러했듯 문화는 경제력이 큰 곳으로 그 중심을 이동해가기 마련이다.

요즘 한국 문화가 세계적 흐름에 잘 편승하는 단계를 넘어 일정 정도는 주도해나가는 면모를 보인다. 한국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쓰는 것을 시작으로 BTS와 블랙핑크 등 한국의 아이돌그룹이 엄청난 팬덤을 형성하며 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에 합류한 한국드라마들은 오징어게임을 시작으로 줄줄이 세계인들을 시청자로 끌어들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한국이 개척하며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이런 다양한 한국 문화에 쏠린 세계의 관심은 한국음식, 한국패션,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까지 이어지며 한국어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20여개나 오르는 변화까지 나타난다.

한국 영화, 드라마, K팝 등 이런 다양한 문화상품들은 K콘텐츠라는 신조어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K콘텐츠 바람은 한국어에 대한 관심까지 증폭시켜 한국어 보급을 위해 뛰고 있는 국내 조직이 그 수요를 다 감당하기 버거워 보인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이 그 문화의 중심이 되기에 한국의 흡입력이 다소 약하다. 국력의 문제도 있겠지만 시간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한국 관광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 실체는 팬데믹 상황이 끝나고 나서야 확인 가능한 일일 것이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문화중심지가 되기 위한 무언가 핵심 기반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국내에도 국제영화제들이 있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부산국제영화제의 전례에서 보듯 쓸데없이 관이 나서서 설치면 잘 일던 불길에 찬물을 끼얹어 꺼트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물론 아직은 부산국제영화제가 힘은 좀 빠졌지만 명맥이 살아있으니 다시 잘 불길을 지피면 충분히 되살아날 수 있겠다. 그게 아니어도 이런저런 개성 있는 국제적 문화행사들이 지자체 이곳저곳에서 열리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국제적 행사로서 숙성되지는 못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기 위한 큰 그림을 갖고 있느냐다. 그런 점에서 여러해 전 한 힙합 아티스트가 했던 한마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힙합 아티스트인 타이거JK는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선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의 힙합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하다 어느 순간 '우리가 왜 그들에게 찾아가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오게 하면 되잖아. 한국에 세계의 힙합 뮤지션들이 모이게 하자' 라는 생각으로 행사를 기획했다."고. 오래전 기억이라 정확한 표현은 모르겠지만 대략의 뜻은 이랬다.

그때의 행사가 뭔지는 당시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낯설었던 세대인 필자로선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대중문화 전문매체들 아니면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일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국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기도 훨씬 전에 했던 매우 대담하고 어찌 보면 무모해보이기도 했던 발상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처럼 K콘덴츠의 영향력이 팽창해가는 시점에 문화종사자들에겐 그런 발상이 진실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문화종사자들보다 문화자본가들의 진지한 관심이 필요할 것도 같다.

아무리 강력한 태풍이라도 그 중심인 태풍의 눈은 고요하다는 말들을 한다. 그 태풍의 눈이 얼마만한 영역이고 그 힘의 강도가 어떤지 등은 잘 모르겠지만 모든 소용돌이의 중심은 주변의 모든 힘을 빨아들이며 전체 소용돌이를 키워나가는 것일 테다.

블랙홀도 결국 그같은 소용돌이의 하나로서 그 주변 모든 별들을 빨아들인다. 그 빨아들인 것들을 어디로 날려 보내는지 어쩐지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게 없다지만 일단 그 소용돌이의 중심이 주변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강력하기에 고요하다고 여겨지는 힘은 그렇게 빨아들일수록 더 강해진다.

우리가 문화의 중심이 되려면 그런 흡수하는 힘이 필요할 것이다. 중심이 된다는 것은 고요한 듯하되 정중동의 무거운 힘을 내포해야 하는 것이다. 문화시장이 개방될 때마다 두려워하던 한국은 이제 세계를 향해 문을 활짝 열었고 우리의 아티스트들은 세계시장에서 날개를 펼쳤다. 그 날개짓으로 회오리를 만들고 그 중심에 설 준비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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