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종의 세상보기] 세상과 점점 가까워지는 묘
[김무종의 세상보기] 세상과 점점 가까워지는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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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세상과 가까운 묘들이 있다. 강남의 선정릉은 선릉과 정릉이 있는 묘다. 각각 조선 제9대 왕 성종과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 그리고 아들 중종을 모신다. 왕릉에 해당하는 이 묘는 반경이 넓다 보니 강남 요지에 있어도 세상과 분리된 모양새다.

서울에 왕릉 중심의 묘들이 모여 있는 것은 '능역은 도성에서 10리(약 4km) 이상, 100리(40km) 이하의 구역에 만들어야 한다'라고 경국대전에 규정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인가와 가장 가까이 있는 묘는 방학동에 있는 연산군묘일 것 같다. 지척에는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서있다. 연산군은 폐위됐기 때문에 일반인 묘와 크게 다를 바 없고 대규모 왕릉이 아니어서 더욱 민가와 가까워졌을 것이다.

서울 외에도 땅은 한정돼 있고 그런 땅에 아파트를 속속 짓다 보니 세상과 거리두기 한 묘가 이제는 점점 세상과 가까워지고 있다. 의정부 고산지역에는 신숙주 묘가 있다. 몇 년 전 신숙주 묘를 찾았을 적에 묘 앞 전경은 고산 택지개발지구가 한창 건립 중이었다. 건설 중인 고산지구를 묘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묘 뒤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 뒤돌아보니 고라니와 눈이 마주쳤다. 짝으로 보이는 두 고라니는 깜짝 놀라 뒤돌아 도망갔고 필자도 놀란 경험이 있다. 그랬던 신숙주 묘도 이젠 대규모 아파트와 접하게 됐다.

일본 도쿄에 갔을 때 한 마을 안에 묘들이 모여있어 의아했다. 우린 묘가 세상과 분리돼 있지만 그들은 묘가 마을 안에 있었다. 이러한 양식은 묘와 죽음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지 궁금하다.

최근 사무실로 제보가 왔다. 묘가 세상과 가까워지면서 김포 장릉에 큰 문제가 생겼다. 세상이 묘와 가까워진다는 표현이 오히려 정확할수도 있겠다. 굳이 김포 장릉이라 하는 것은 파주 등지에도 장릉이 있기 때문이다. 김포 장릉은 조선 16대 왕 인조의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를 모신 능이다.

아파트 건설사들은 아파트 건설시 문화재인 왕릉 경관이 훼손되지 않도록 했어야 하는데 왕릉 묘에서 아파트가 떡하니 보인다. 더욱이 유네스코로 지정된 왕릉은 경관을 유지해야 하는 조건을 달고 있다. 왕릉은 애초 앞에 안산이 보이게 조성된다. 아파트가 안산을 가로막은 것이다. 새로 지어지는 검단신도시의 아파트들이 20층이 넘어가면서 장릉에서 보여야 할 인천 계양산을 가리게 된 것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건설사를 고발하면서 현재 2개 건설사 아파트 12개 동이 공사가 중단됐다.

이에 입주 예정자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됐다. 내년 입주를 앞두고 있는데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를 못 하게 됐으니 이 또한 큰일이다. 제보자는 검단 신도시 예미지 트리플에듀 입주 예정자라고 밝히고 "입주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입주예정자들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 무엇으로 보상해 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문화재청과 인천시(서구청), 건설사 간 싸움에 애꿎은 입주예정자 등만 터지게 됐다. 특히 아파트 외관 및 도색과 같은 경관 부분도 입주예정자들과 협의도 없이 여기는 누구의 아파트인가"라고 토로했다.

김포 장릉 이슈는 ‘왕릉 앞 아파트를 철거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이 넘을 정도로 이슈화돼 입주민은 더욱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문화재청은 김포 '왕릉뷰' 아파트 20개동을 허물거나 58m 나무를 심는 것으로 대안을 고민하고 있으나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문제 발단을 보면 문화재청과 지자체의 원인 제공도 있어 보인다. 건설사들은 인허가권자인 인천 서구청에서 관련 절차를 거쳐 착공 허가를 받았다. 문제는 2017년 법 개정 내용이 해당 지역의 ‘토지이용계획확인원’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천도시공사는 2017년 건설사에 토지를 매각했고 당시 공동주택용지 공급 공고문에 따르면 최고 20~25층짜리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김포 장릉 문제를 두고 산 자와 죽은 자 누가 더 중요한 것인지 묘연하다. 내년에 3400여가구가 입주할 예정으로 솔로몬의 지혜를 속히 찾아내길 바란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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