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직업윤리의 힘
[홍승희 칼럼] 직업윤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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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작전명 미라클이라는 한국의 탈출 작전은 해외로부터도 찬사를 받았지만 한국 국민들에게도 상당한 자부심을 안겨줬다. 물론 국내 메이저 언론에서는 이 작전뉴스를 재빨리 황제 의전 논란으로 덮어버렸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 자랑스러운 철수작전 팀의 활약상이 선물한 뿌듯함을 좀 더 누리고 싶은 아쉬움을 남겼다.

공군 특수부대 CCT(공정통제사)에 대해서는 각 군의 여느 특수부대들에 비해 그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기에 젊은 세대의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주변 상황파악과 안전한 이송작전에 CCT 요원들의 활약도 컸지만 일단 현장을 빠져나왔다가 다시 카불공항으로 돌아가 조력자들을 파악하고 탈출을 앞두고 심리적 불안이 컸을 그들을 끌어안은 대사관 직원들도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다.

또한 법무부의 발 빠른 법적 대처와 짧은 시간 내에 수송기가 영공을 경우하게 될 각국의 협조를 얻어낸 외무부의 신속한 활동 등 여러 부처의 합동 작전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팀워크를 보인 관계자들이 국민들을 흐뭇하게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 나가서 현지 대사관 등의 협조 얻기가 힘들다는 푸념들이 많았던 것을 상기하면 한국의 외교·행정력도 매우 성장했음을 깨닫게 된다.

코로나19 상황이 터지기 전 해외여행 중에 현지 한국대사관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고는 비로소 국가가 나를 챙겨주고 있다는 느낌에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전에는 국내를 벗어나는 순간 국가와는 단절된 것만 같던 것에 비해 이제 국가가 해외에서도 자국민을 챙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지각하는 것은 꽤나 행복한 일이었다.

이번 아프가니스탄의 한국 국민들을 우선 탈출시킨데 이어 곧바로 현지 조력자들을 구하기 위해 날아간 구출팀의 활동을 보며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성장한 것은 경제를 넘어 국민들의 직업적 자부심과 자존심이 커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험한 상황에 뛰어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맡은 직업적 책임감을 위해 기꺼이 감수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국력임을 보여준 것이다.

실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그런 자부심과 자존심을 갖고 있다면 부패 등 여러 사회문제들도 사라져 갈 것이다. 또한 편견과 선입관을 벗어나 진정한 선진사회로의 진보가 이루어질 것이다.

1987년을 다룬 영화가 나왔다는데 그 시대를 건너온 세대로서 부담스러울까 싶어 미루다 최근에서야 그 영화를 봤고 보길 잘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영화가 말하는 것도 결국 특별할 것 없이 살던 각 단계에서의 관계자들이 정치적 입장 따위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직업윤리에 충실함으로써 정치·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이었다.

그런 직업윤리는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인간적 자존심과 맡은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고 개혁의 타깃이 되고 있는 특정 집단들은 스스로의 권력과 영향력에 휘둘리며 자존심을 포기한 대가를 지금부터 치러 나가야 한다.

힘이 있는 집단일수록 자신들의 힘을 행사하는 일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자부심은 그들의 직업적 자부심이 아니라 타인의 권리를 찬탈함으로써 부당하게 획득한 힘에 스스로 휘둘리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은 마약과 같아서 스스로 끊고 나오기가 어렵다. 같은 직군에서도 물론 직업적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건재하지만 일단 힘을 행사하며 권력을 맛본 사람들은 중독에 빠져들기 쉽다.

사회가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각기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부심을 갖고 직업윤리를 지켜나가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야만 한다. 그러자면 직업적, 물질적 안정감도 어지간히 따라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요즘 젊은이들을 보며 다소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젊은이들이 문제를 만드는 주체라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상황이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점에서 국가사회가 고민해야 할 몫이 크다.

대선정국으로 이미 들어선 상황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 시선 속에 자부심 가질만한 일조차 찾기 어려운 젊은이들이 제대로 자리하길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다. 표 하나로 이용할 생각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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