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지속가능 성장의 밑천은 분배다
[홍승희 칼럼] 지속가능 성장의 밑천은 분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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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우리 경제의 롤 모델로 여겨지던 일본이 요즘은 계속 허둥대며 실책을 연달아 범하고 있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일본을 따라가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고 그들이 정책결정자의 지위에 있어서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우리가 아득히 멀게만 보았던 일본의 등을 바짝 따라붙을 정도는 됐다.

필자의 어린 시절 어른들은 한국과 일본의 격차를 50년 이상이라고 말해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런 일본과의 격차가 최근 들어 대폭 좁아지며 90년대쯤엔 한 20, 30년 차이가 난다고 하더니 요즘은 부문별로는 역전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일본의 반도체 공습 이후 한국의 경제가 소부장산업의 독립을 시작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바이오산업의 빠른 성장 등을 통해 급속성장을 하고 있어서 일본과의 격차를 큰 폭으로 줄여가고 있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던 시점부터 주력산업의 쇠퇴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폄하하던 국내 분위기 속에서 관련 인력들이 일본으로 취업하러 가는 게 드물지 않았던 시절을 겪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요즘의 신들린 듯 잘 나가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경이롭다.

비록 팬데믹 상황에서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 중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으며 올해 들어서는 빠르게 반등해 상반기를 지나며 코로나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7월 수출액이 554억 달러로 무역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일본과의 역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한국 경제의 전망을 밝게 하는 요소로는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조선, 컴퓨터, 휴대폰 등 전통적인 주력산업이 두루 호조를 보일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바이오, 화장품, K컬처 등 신 성장 품목에 더해 농수산품, 식품까지 세계시장을 향해 기세를 뽐내고 있다. 특히 신성장품목의 성장세가 전통산업인 철강을 앞지르는 단계로 접어들며 한국경제의 전망을 더욱 밝혀주고 있다.

물론 아직은 일본이 우리를 앞서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그 간격이 극복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은 국제기구에서 계속 상향조정할 만큼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IMF는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을 4.3%로 높여 전망하고 있다.

그에 비해 일본 경제는 당초 2.3%에서 1.5%로 하향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림픽 부채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그 밖에도 일본은 그간의 주력산업이 줄줄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어서 전 세계가 일본의 미래를 상당히 어둡게 보고 있다.

2차대전 패전 후 초토화됐던 일본경제가 비록 한국전쟁 특수로 다시 일어섰다고는 하지만 한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반짝이던 시절을 뒤로 하고 쇠퇴의 기미가 뚜렷해지고 있다. 일본의 몰락을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지고 있다. 짧은 기간에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일본은 잘 나가던 시절에도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높은 성장세를 보이던 기간에는 일본 내 소비도 활발했었고 그런 내수시장이 일본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일본은 소비가 늘지 않아 고민하는 경제구조로 바뀌었다. 다른 나라들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시기에도 일본은 디플레이션을 고민하는 사회로 전환된 것이다.

현재 일본의 최저임금은 한국보다 낮고 실질구매력에서도 한국이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 이는 곧 한국의 경제가 여전히 성장세를 이어가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한국의 적잖은 경제전문가들이나 정책결정 브레인들 사이에서는 '분배'라는 단어에 여전히 거부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분배를 경제적 관점에서 보는 게 아니라 이념의 잣대로 해석하는 고착화된 사고방식 때문이다.

한국이 지금 경제와 산업이 후퇴하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구매력을 뒷받침할 분배의 힘을 받아들여야 한다. 소수 부자의 소비는 고가의 명품들을 위주로 밖에 늘릴 여지가 없다. 기업의 매출을 늘리는 가장 빠른 길은 대다수 국민들의 활발한 소비활동 뿐이다.

물론 수출이 주력이겠지만 그 수출환경은 늘 불안정하다. 내수시장의 뒷받침 없이 수출에만 올인하면 작은 외풍에도 경제의 근간이 흔들린다. 뿐만 아니라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불안한 미래요소, 예를 들면 인구감소, 노령화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처할 길이 없어진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낡은 사고의 틀을 하루 빨리 탈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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