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이지메문화와 도쿄올림픽
[홍승희 칼럼] 이지메문화와 도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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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아 과연 제대로 치러질지 의구심을 자아냈던 도쿄올림픽이 어쨌든 시작됐다. 중도 취소될 수 있다는 말들도 여전히 나오고 있는 현재 상황인데다 후원기업들이 한발 빠지는 일도 벌어지는 등 경제적 손실은 점점 더 커져갈 징조들만 이어지고 있지만 끝내는 일본 정부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어떤 결론에 다다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은 시작되기 전부터 세계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행태를 보여줬다. 강대국들을 상대로는 어떻게든 친절한 외교로 접근하며 도쿄올림픽 지지를 이끌어내려 노력한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일본 지지가 당연하다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올림픽 시기가 다가오며 외국인 선수들의 일본 입국이 시작되면서는 소위 강약약강하는 일본의 태도가 노골화됐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한국 선수단에 대해서는 일거수일투족에 시비를 걸고 있어서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일본 정부나 정치인, 관리 등이 저마다 뱉어내는 표현들도 당사자인 한국은 물론 제3국의 시선에서도 매우 부적절하거나 때론 어처구니없는 주장들이 많다. 일반 네티즌들의 반응은 더욱 가관이지만 어차피 인터넷 상에서 익명으로 쏟아내는 투정들이야 기분은 나쁠지언정 한일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니 무시하고 넘어가도 좋다.

다만 일본 네티즌들의 댓글들을 보거나 해외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물들을 보면 자주 일본인들이 아직도 한국을 자국 식민지로 보고 있구나 싶은 글들이 보인다. 이런 네티즌들의 의식은 일본 교육이 그러하고 그런 교육방침을 일본 정부가 요구하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된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봐야 하는 것일 테지만 지금 도쿄올림픽에서 보이는 태도나 해방 과정에서부터 시작돼 그간 국제외교무대에서 한국을 따돌리기 위해 행해진 일본의 여러 행위들은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전형적인 이지메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지메는 일본의 국민성이라 불러도 될 만한 문화현상이다.

이지메, 우리말로는 통상 집단 따돌림 혹은 괴롭힘이라고 번역되며 한국에서도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근래들어 부쩍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를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한일 양국이 꽤 차이가 있는 듯하다. 일본에서도 분명 이지메가 문제라는 인식은 갖고 있지만 매우 심각한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거나 일정 부분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사회적 인식이 그러해서인지 성인이 되어서 직장생활 혹은 동내 이웃들 간에도 청소년들만큼 폭력적이지는 않지만 집단 따돌림은 일반적인 사회현상으로 읽힌다. 우리 사회에도 지역갈등이나 학벌 등으로 따돌림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본은 그 강도가 훨씬 강할 뿐만 아니라 약하다 싶은 상대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집단 따돌림 수준을 넘어 종종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몇 년 전 도쿄에서 만난 한 일본인 교수는 이를 섬나라의 특징으로 보기도 했다. 그때 받은 인상은 일본인들 스스로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를 어쩔 수 없는 일로 간주하는 듯했다.

따라서 일본이 한국을 향해 그간 행해온 정부 차원에서의 무례함도 일본 사회 내 개개인간 만연해 있는 이지메문화의 확장판으로 해석할 만하다. 그야말로 한국은 약한 나라, 한때 일본의 식민지였으니 여전히 그 관계가 지속돼야 한다는 그들 욕망의 표현인 것이다.

그동안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뒤처져있어 일본 차관이 아쉬웠던 시절도 있었고 또 일본의 기술이 매우 요긴했던 때도 많았었기에 일본 정부의 요구에 자주 끌려 다녔고 그런 한국 정부를 향한 일본 정부의 농락에 일본 스스로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던 한국이 계속 성장하는 데 일본은 90년대 이후 정체기를 겪으며 확실했던 우월적 지위가 불안해지며 더 바짝 한국의 고삐를 쥐고자 한 게 2년 전의 반도체 도발이었다.

그러나 그 도발은 선을 넘었다. 일본이 요구한 것은 한국의 밑천을 다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기밀사항에 속하는 삼성반도체의 생산 공정 전 과정에 대한 공개를 요구한 것이다.

이때 한국이 과거처럼 일본 요구에 굴복했다면 한국의 미래가 통째로 날아갈 상황이었다. 당시 정치권이나 대다수 언론에서는 습관처럼 일본과 타협하라고 했지만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겐 강해지는 일본사회의 특성을 외면한 주장이었을 뿐이다. 해방 후 일본은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을 철저히 고립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은 이지메 대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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