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투 트랙 외교의 결실
[홍승희 칼럼] 투 트랙 외교의 결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일각에서는 정부의 투 트랙 외교에 불만을 터트리지만 한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요즘처럼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미·중 분쟁이 갈수록 날카로운 대립 국면으로 진전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어느 한 진영에 완전히 기울지 않은 상태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그런 균형외교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힘든 만큼 국가적 존재감이 높아지는 확실한 대가를 얻고 있다. 분쟁 중인 미국이나 중국은 물론 진형을 구축해가고 있는 양쪽 모두에서 한국이 반대편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서로 당기는 모양새는 우리가 오랜 기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이런 일이 어느 한가지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빠른 기간에 전 세계 최빈국에서 일어서서 어느새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경제적 성과가 밑바탕에 있겠지만 기술적으로도 세계를 선도하는 분야가 늘어가고 정치적으로도 개도국들의 선망을 받을만한 민주주의의 성취를 일궈냈다. 게다가 그런 정치·경제 부문에서의 성장을 밑거름 삼아 국방력 및 방위산업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해 주변국들을 긴장시키며 문화적 영향력 또한 나날이 커져가고 있어서 종종 우리 스스로도 놀라게 된다.

그러나 빠른 성장이다 보니 군데군데 빠진 분야들 또한 눈에 띈다. 그 가운데 다른 분야보다 다소 뒤늦은 게 우주분야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우리의 우주과학이 아주 뒤처진 것은 아니다. 표면에 드러나는 성과는 만족할 수준이 아니지만 그동안 꾸준히 연구 성과를 축적해왔고 발사체 부문은 다소 늦었지만 위성체는 상당히 높은 수준을 달성했다.

늦었지만 달 탐사계획도 잡혔고 그간 NASA와의 연구·개발 협력도 제법 이루어졌다. UAE의 화성탐사선 발사계획은 한국이 이끌어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우리 자체적인 달 탐사선이나 화성 탐사선 발사 실적이 없던 까닭에 UAE도 참여시킨 NASA 주도의 본격적인 달기지 건설계획인 아르테미스 협정 체결 당시에 8개 참여국 중에 한국은 쏙 빠졌다. 한국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NASA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재차 참여 요청을 한 한국에 NASA가 뒤늦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한`미 대통령 회담의 선물이 아니라 중·러가 미국 중심의 아르테미스 협정에 대항해 달기지 협정을 맺고 러시아 주도의 우주정거장 탈퇴, 독자적 루나게이트웨이 건설 발표가 나오자 부랴부랴 한국을 미국 쪽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중·러의 프로젝트 발표가 없었다면 여전히 한국은 외면당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한국의 반도체 기술과 생산능력에 더해 백신 생산능력까지 바이든 행정부가 다급히 필요로 하는 기술들을 한국이 갖고 있다는 점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미국이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정부에 상냥하게 구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지금처럼 한국의 요구에 신경 쓰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이 쿼드 참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대응하는 자세를 보이니 한국에 보다 많은 경제적 기회를 주겠다고 나서는 일면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한국이 큰 시련을 겪을 때도 원인제공자인 미국은 모르쇠로 일관했던 점을 떠올리면 미국의 태도가 확실히 트럼프 시절보다 합리적으로 변하긴 했다.

아직은 친 일본 인사들이 많은 민주당 분위기가 한국을 종종 곤혹스럽게 하고 있지만 오바마 시절까지의 역대 정부와 비교하면 그래도 많이 변했다. 회담 결과가 나오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여러 미국 언론의 전망을 보면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도 한국의 입장과 요구를 상당히 수용한 대북 입장을 밝힐 것이라 한다.

속된 말로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힘이 약한 내편은 종종 무시를 당해도 쉽게 노선 갈아타기 힘드니 억울한 일 당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힘도 없으면서 무조건 중간에 서겠다고 했다가는 중심도 못 잡고 양쪽으로부터 몰매나 맞을 위험성이 크다.

문제는 우리가 쓸 수 있는 힘이 생겼으니 합당한 몫을 챙기겠다는 데 자꾸 발목 잡으며 빨리 가서 머리 숙이라는 식의 비굴을 정부에 강요하는 내부의 허약한 목소리가 외교를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끝까지 널뛰기에 깍두기 노릇을 계속 할 것도 아니건만.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