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미국이 2위국을 대하는 법
[홍승희 칼럼] 미국이 2위국을 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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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처신하기 가장 어려운 게 2인자 노릇이 아닐까 싶다. 세계사에서 2인자가 1인자로 올라선 사례는 흔치 않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이는 국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 미·중 관계도 2인자가 위협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미국의 응징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많은 이들이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미국 입장에서도 최근 중국의 저항은 그간의 어떤 경우보다 더 강력해서 어쩌면 다소 당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미국 대표들이 중국은 방중하는 대신 알래스카에서 만나기로 해 미국의 중국 길들이기에 중국이 일단 수그리는 모습을 보이나 싶었지만 막상 만난 양국 입장은 중국내 언론 보도만 보자면 중국의 역습에 미국이 입을 다문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미국이 다른 밑그림을 그리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된 것은 2차 대전 이후다. 당시 소련이 미국에 맞선 사회주의 진영의 맹주였지만 역시 경제적 형편에서 밀려 실질적 국력으로는 2위에 그쳤다. 그런 소련, 즉 소비에트연방은 결국 미국의 경제적 공세에 더해 이질적 문화전통을 가진 다민족 연방체의 한계까지 겹쳐 결국 여러 나라로 분할되며 몸통만 남은 러시아는 그만큼 힘이 약화됐다.

그 과정에서 지렛대로 사용하기 위해 중국이 죽의 장막을 걷고 세상에 나오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 또한 미국이었다. 그렇게 미`중 국교의 길이 열렸고 자본주의 세계는 당시 이미 8억명 인구를 가진 중국의 시장 잠재력에 환호했다.

그 틈에 한국전쟁으로 패전 후유증을 극복한 일본이 경제력 하나로 세계 2위국을 차지했다. 그 때까지도 패전국으로서 정치적 후견인 노릇을 하는 미국의 눈치만 살피던 일본은 2위국이 되면서 차츰 미국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자 했고 당시 일본 내에서는 ‘NO라고 말 할 수 있는 일본’이 사회적 슬로건처럼 대두됐다.

그런 일본을 잃어버린 30년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트린 미국의 공격 수단은 금융이었다. 한창 호경기를 구가하던 일본은 해외로부터 유입되던 재화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엄청난 부동산 버블을 일으키면서도 미국을 향해 환율조작으로 야금야금 공격을 해댔다. 그러다 소위 플라자 합의를 통해 미국의 환율 역공을 당하며 삽시간에 상황이 역전됐다.

일본은 아직도 자국통화인 엔화가 안전자산이라 굳게 믿고 겁 없이 정부 채권을 마구 발행하고 있지만 이미 플라자 합의 이후 약화는 시작됐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일본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모두 떠넘겨놓은 막대한 정부 부채로 인해 재정운용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몸짓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이 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틈에 개혁`개방을 기치로 내걸며 산업화의 길로 들어선 중국은 막대한 저임금 노동력을 토대로 빠르게 세계의 생산기지로 발전했다. 초기의 경공업 중심에서 탈피하는 과정에서부터 외국 자본을 대하는 중국의 체제적 문제점들은 드러났지만 세계는 여전히 중국의 엄청난 시장 잠재력에 시선을 빼앗겨 그 문제들조차 눈감아 버렸다.

그런 사이에 중국은 첨단산업에서 빠른 성장을 해나가며 일본을 대신해 세계 2위국의 지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일본과 달리 국방력 면에서는 개방 이전부터 일찌감치 막강한 군대와 비대칭적으로 발전시킨 군수산업의 능력까지 갖춘 상태였다.

그런 중국이 드디어 포스트 아메리카를 외치기 시작했고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세계적인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때까지도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 듯했다. 간헐적으로 인권문제를 툭툭 던지듯 거론하기는 했지만 깊이 개입하지 않았다.중국 또한 2위국의 함정에 걸리지 않도록 환율 문제 등에서 늘 한계를 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러나 비교적 젊은 지도자였던 시진핑의 등장과 함께 중국은 서두르기 시작했다. 일대일로 사업으로 전 세계적인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주변국들과의 영토분쟁 꾸준히 이어나갔다.

트럼프가 느닷없이 돌출행동을 보인 것처럼 보인 미`중 갈등의 출발은 아마도 미국이 그동안 준비해온 카드를 불쑥 내던진 것뿐일 터다. 그렇기에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중국의 기대를 무너뜨리듯 트럼프가 제기해온 문제에 소수민족 탄압문제를 더 얹어 중국을 압박한 것이리라.

이를 확인한 중국이 미국을 향해 거칠게 대응하기 시작했지만 그 속내는 퍽이나 불안해 보인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미래가 없다는 조바심을 내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이야 아직 견제 당할 2위국까지 갈 길이 멀지만 서서히 준비를 갖출 때는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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