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재활용 어려운 예쁜 쓰레기' 
[데스크 칼럼] '재활용 어려운 예쁜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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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마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 배출한다. 지난해 가을까지 종이, 플라스틱, 금속, 유리병, 비닐, 스티로폼으로 나눴는데 얼마 전부터 투명 페트병을 따로 수거하고 있다. 투명 페트병 분리 배출은 자원 재활용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재활용 투명 페트병으로 옷, 신발, 가방 등을 만들 수 있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 배출할 때마다 투명 페트병 수거 공간을 눈여겨본다. 갈수록 수거되는 투명 페트병 양이 늘어나 뿌듯함을 느낀다. 빈 투명 페트병이 생기면 버리기 전 상표(라벨)를 떼는 버릇도 생겼다. 

그동안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에 신경 쓰면서 자원 순환을 위해 노력한다고 여겼는데,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나온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얘기를 듣고 허탈감에 빠졌다. 즉석밥 그릇과 화장품 용기를 재활용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환경부 분리배출 표시에 관한 지침을 확인해보니 플라스틱과 비닐 재질을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폴리스티렌(PS), 기타(OTHER) 등 여섯 가지로 표시한다. '햇반'이나 '오뚜기밥' 같은 즉석밥 그릇엔 '플라스틱 OTHER'가 새겨진다. 화장품 용기 중 상당수도 플라스틱 OTHER로 분류된다. 

플라스틱 OTHER란 여러 종류 플라스틱을 버무려 만든 복합재질임을 가리킨다. 같은 플라스틱이라고 OTHER가 새겨진 복합재질은 재활용이 어렵다고 한다. 한 전문가는 언론을 통해 "같은 즉석밥 그릇만 따로 모으지 않으면 재활용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어린 딸이 '오뚜기밥'과 '비비고 설렁탕'을 좋아해, 하루 1~2개씩 나오는 즉석밥 그릇을 깨끗이 씻어서 다른 플라스틱과 함께 배출해온 게 허무할 지경이다. 

예쁘게 생긴 화장품 용기도 문제다. 즉석밥은 출시된 제품 종류가 많지 않아 같은 제품 그릇을 모아 재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화장품은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어서 즉석밥보다 재활용이 어렵다. 홍수열 소장은 화장품 용기애 대해 "예쁜 것은 재활용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지난해 12월 재행정 예고한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표시 및 분리배출 표시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보면 '재활용 어려움' 등급 품목 중 화장품 포장재가 라벨 표기 예외에 포함됐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화장품 용기 90%가 재활용 어려움 등급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2025년까지 화장품 포장재 중 10% 회수 명분으로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화장품 용기가 "재활용 어려운 예쁜 쓰레기 평가를 받는다"며 "화장품 생산자들이 재질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화장품 업체들이 예전엔 재활용 잘 되는 PP 재질로 샴푸와 린스 용기를 만들었으나, 재활용 안 되는 페트병으로 바꿨다면서 생산 단계에서 재활용 잘 되는 재질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화장품 업계도 플라스틱 포장재 문제의 심각함을 잘 알고 있다. 지난 1월27일 대한화장품협회는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애경산업, 로레알코리아, 서울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자원순환사회연대 등과 '2030 화장품 플라스틱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선언했다. 화장품 업계는 "화장품 플라스틱 포장재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순환경제 실현을 위한 4대 중점목표"를 내놓았다. 4대 중점목표는 '재활용 어려운 제품 100% 제거', '석유기반 플라스틱 사용 30% 감소', '리필 활성화', '판매 용기 자체회수'다. 

이날 선언에 대해 서경배 대한화장품협회 회장은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 절감과 지속가능한 순환경제 실현을 위한 업계의 고민이 결집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한화장품협회는 앞으로 더 많은 화장품 기업이 이니셔티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국내 최대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의 수장인 서 회장 공약이 지켜지길 바란다. 재활용 어려운 예쁜 쓰레기 취급을 받는 빈 화장품 용기가 예뻐도 재활용 잘 되도록 바뀌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이주현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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