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돌아온 관피아 전성시대
[기자수첩] 돌아온 관피아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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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관피아(관료+마피아)들이 다시 전성시대를 맞았다. 손해보험협회장에는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던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취임했다. 공석이 된 한국거래소 이사장엔 손병두 금융위 전 부위원장이 내정됐다. 은행연합회장에는 금융위 출신인 김광수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SGI서울보증보험 사장에는 유광열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선임됐다. 유 사장 역시 금융위에 몸담았던 관(官)출신이다.

생명보험협회장에는 17∼19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정치인 출신 정희수 전 보험연수원장이 발탁됐다. 관피아 논란은 빗겨갔지만 정피아(정치인+마피아)라는 점에서 성격은 같다. 이 뿐만이 아니다. 차기 수장 선출을 진행하고 있는 농협금융과 한국주택금융공사(NF) 에도 관료 출신 인물을 선임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특히 주금공은 최준우 전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쯤 되면 관피아 딱지가 붙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금융당국과의 협업이 필수적이거나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리에 '힘 있는' 인물들을 원하는 금융권의 바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금융사들로서는 난제가 산적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금융권 불확실성은 더 커졌고 핀테크·빅테크 바람이 불면서 금융사와 규제 차별도 생기기 시작했다. '방패막이'가 절실한 시점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관료출신 회장이 금융당국 관계자를 만날 때, 민간출신 회장이 만날 때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며 "어떤 쪽이 금융당국과 더 원활히 소통하고 주요 현안을 잘 조율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오랜 기간 일 해온 이들이 자신의 분야에 재취업하는 것을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항변한다.

관치(官治)에 치를 떨던 금융사들이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관료출신을 수장으로 맞이하려는 이중성에 입맛이 쓰다. 우리 금융이 얼마나 관치에 길들여졌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사 임직원들에게 현장경험을 겸비한 민간 출신 전문가 역시 요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패배감을 심어주는 동시에, 줄 대기·고위직 카르텔 문화를 우선시하게 만들어 결국 우리 금융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비판이다. 고위 관료의 재직 시절 인맥을 동원해 금융당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이기에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공산도 크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대표 금융 적폐인 관치 인사가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도 심히 우려스럽다. 지금 거론되는 기관들의 수장을 뽑을 때 대외적으로는 공모 절차를 거치지만 결국 청와대가 낙점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전 "보수정권이 금융권 인사를 관치로 물들였다"고 비판했다. 채용비리에는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며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집권 말기에 들어서는 관피아들의 자리 나눠먹기 행태를 침묵으로 용인하고 있다.

관피아의 폐해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뼈져리게 확인됐다. 세월호 참사를 집요하게 비판해온 현 정부마저 이런 식이라면 다음 정권에서 관피아 논란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말 뿐인 적폐청산 앞에서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때 가서 우리는 또 얼마나 후회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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