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왕이는 왜?
[홍승희 칼럼] 왕이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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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외교부장 왕이가 한국을 방문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고 문재인 대통령도 예방했다. 그의 방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 시국에 그가 왜 방한하려는 지를 두고 사전에 여러 추측들이 나돌았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미 압박용으로 시진핑 주석이 방한하기 전에 사전 협의를 할 것이라거나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의 중재역할을 기대한 것이라는 분석도 적잖이 따랐다. 하지만 실제 방한한 왕이의 행보와 발언을 보면 그런 목적이라기에는 매우 오만방자하고 무례했다.

일단 강경화 장관과의 면담에는 20분이나 지각하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시진핑 방한에 대해서는 '여건이 되면'이라는 전제를 달며 마치 한국에 먼저 사전 조치를 하라는 식의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세계에는 미국만 있느냐'는 발언을 하며 한국 정부에 줄 잘 서라는 식의 압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는 결코 대등한 국가 관계가 아니라 갑질을 작정하고 협박을 하는 인상을 주는 언사다.

물론 미국 역시 한국 정부를 향해 줄 잘 서라는 식의 압박을 가해오고 있기도 하다. 안보는 미국, 무역은 중국이 최우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처지를 이용해 양쪽에서 가랑이 찟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대중 무역분쟁을 벌이면서 종종 적아 구분 없이 폭탄을 마구 터뜨리는 바람에 당초 기대했던 것에 비해 대중 전선을 상당히 약화시켰다면 중국 또한 현재로서는 전 세계의 공분을 살 짓들을 여럿 했다. 한국은 미중 무역분쟁 이전에 이미 사드배치로 인해 중국의 경제보복을 당했지만 미국은 그에 대한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의 주요 수출품 일부에 대한 관세장벽을 높였다.

그야말로 한국으로 하여금 힘센 두 깡패가 번갈아 주먹 먹이기를 당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런 억울한 상황을 한국만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정학적 입지가 몹시 불리한 데다 분단 상황까지 끼고 있는 한국만큼 당하는 경우도 드물다.

지금 한국 정부가 미친 듯이 국방력을 키우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런 지정학적 불리함과 양대 강국의 세력다툼 속에서 스스로 설 힘을 갖자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두고 협박하면서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놓지 않으려 버둥거리고 중국은 한국기업들의 가장 큰 시장을 무기로 한국을 종속국 취급한다.

한국은 경제규모 10위권이 코앞이고 국방력은 세계 6위라고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 앞에서는 그야말로 힘없는 어린아이와 진배없다. 그러니 국내에서도 빨리 한쪽으로 줄서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이들이 있지만 한국은 안보도 시장도 놓지는 순간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것들이 먼지처럼 흩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번 왕이의 무례함은 우리의 대중관계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준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반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중국은 아마도 이번 왕이의 행태와 발언 등을 통해 한국을 겁박하려 드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약간의 당의정을 던져주었다고 여기며 그보다 더 강하게 한국의 사드 트라우마를 자극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세계경제가 다 어려운 시절이니 소비시장으로서의 중국의 파워 정도면 충분히 한국을 자극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왕이의 도발적 행동과 발언을 통해 보여준 중국의 겁박에 휘둘리면 앞으로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트럼프의 미국이 보여줬던 일방주의적 대중전선 전면에 설 필요도 물론 없다.

다만 우리로서는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에서 틈을 찾아내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더 벌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차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대해서도 요구해야 하는 미래의 한반도 전략이다.

이제까지처럼 북한을 중국 쪽으로 몰아붙이는 대북정책은 한민족에게 불행한 일이지만 미국에게도 결코 이득이 될 수 없음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을 향한 중국의 저 오만한 기세를 꺾을 수 있고 동북아의 평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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