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上] "잇단 과로사, 구조적 문제 방치한 탓"
[택배노동上] "잇단 과로사, 구조적 문제 방치한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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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새 물류량 47배↑···'공짜노동' 분류작업 비중 50%
"낮은 수수료, 산재보험 적용도 어려워···처우 개선 필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택배지부 관계자들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총파업 기자회견 및 결의대회를 마친 뒤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 병력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택배지부 관계자들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총파업 기자회견 및 결의대회를 마친 뒤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 병력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주진희 기자] "저 집에 가면 새벽 5시예요. 밥먹고 씻고 한숨 못자고 나와서 바로 터미널에서 또 물건정리 해야해요. 저 너무 힘들어요...(생략)"

지난달 1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신정릉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김모씨(36)가 사망 직전 동료에게 보낸 문자내용의 일부다. 김 씨는 성수기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택배 물량이 급증한 탓에 새벽까지 배송을 해야만 했다.

올해 들어 택배기사 15명이 사망했다. CJ대한통운 택배간선차 운전기사 강모씨(39), 쿠팡 물류센터 택배포장 업무담당 장모씨(27), 한진택배 대전터미널 화물운송기사 김모씨(58),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김모씨(48) 등 사망한 노동자들의 연령층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이에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젋은 나이에다 평소 아무런 지병도 없었던 청년들까지 죽어나가고 있다"며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한 명백한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분류작업만 8시간···"새벽 출·퇴근 일상"
택배기사들의 일과는 크게 △상품 분류작업 △간선상하차 △배송 3가지로 나뉜다. 분류작업이란 배송을 시작하기 전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세부구역별, 택배기사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말한다. 간선 상하차는 터미널 등 물류센터에 도착하는 상품들을 배송 트럭에 싣고 내리는 일을 뜻한다.

대책위는 이 가운데 관행적 업무로 칭해져 오던 '분류작업'이 과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택배 물량이 많지 않던 시절, 자연스레 도맡던게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는 것.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연간 국내 택배물량은 1998년 5975만개에서 지난해 27억9000만개까지 47배 급증했다. 여기다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물동량은 30%(약 36억개) 더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책위가 지난 8월(비수기 시즌) 택배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근무 실태를 조사한 결과, 80.4%가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71.3시간인 것으로 집계됐다. 화~금요일 평균 노동시간이 12.7시간, 토요일 10.9시간, 월요일 9.5시간으로 응답했다. 성수기에 들어서면 평균 80시간을 훌쩍 넘긴다.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A씨는 "매년 급증하는 물량 때문에 택배기사 한 명이 하루 기준 상품을 분류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최소 5시간, 연휴기간이 겹치거나 성수기 시즌이 되면 최대 8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며 "새벽 출근을 하지 않으면 물량이 밀려 제때 배송이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특히 대책위가 공개한 강 씨의 사망 직전 행적을 살펴보면 3일동안 귀가하지 못하고 일하거나 22시간 연속 근무를 지속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는 지난달 21일 오전 1시 곤지암허브터미널 주차장 내 간이휴게실에서 갑자기 쓰러진 후 병원에 후송됐으나 사망했다.

한진 소속 택배기사 B씨는 "분류작업이 언젠가부터 택배기사의 역할이라고 관행적으로 칭해져오면서 '공짜노동'이 돼버렸다"며 "쉴새없이 들어오는 물량을 혼자 분류하고 싣고 내리기가 힘들어 알바를 고용하고 싶지만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CJ대한통운 강북지사 송천대리점에서는 택배기사들이 매달 40만 원을 내고 분류인력 아르바이트 인력을 따로 고용했다. 김 씨는 인력 비용을 부담스러워 이른 아침부터 홀로 분류작업까지 도맡다 숨졌다. 

그간 택배사들은 분류작업이 '배송의 한 과정'이라며 2011년 당시 법원에서 판례를 내린 점을 근거로 택배기사의 역할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대책위 입장은 달랐다.

대책위는 "CJ대한통운 등 사측이 주장하는 법원 판결문은 2011년 당시 대리점 업주들이 CJ대한통운 측에 낸 소송에 대한 판결문으로, '분류작업이 CJ대한통운과 대리점 공동의 업무'이지만 대리점이 그 업무를 묵시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비용을 지불할 근거가 없다고 판결한 것"이라며 "이 판결문이 분류작업이 택배노동자들의 업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정부는 택배서비스종사자를 '분류'가 아닌 '집화', '배송' 등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명시하는 등 택배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골자로 하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을 연내 통과시키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강남2지사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강남2지사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건당 700원대 수수료···"물량은 많고 이익률은 낮아"
현저히 낮은 건당 배송 수수료도 문제로 꼽힌다. 먼저 택배 평균 배송단가의 경우 2000년 기준 3500원에서 지난해 2269원으로, 20년새 35% 하락했다.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통한 물류산업이 활성화되면서 택배물량은 지속 늘어나고 있으나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택배 운송단가는 계속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익률은 저하되고 택배기사는 장시간 노동을 지속해야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택배기사가 받는 1건당 배송 수수료는 평균 782.1원 수준이다. 무게와 크기가 달라도 10~20원 차이일 뿐이다. 700원대의 수수료를 쌓아 받는 택배기사의 월급에서는 또 다시 20~30%의 대리점 관리수수료와 택배차량 할부 및 기름값 등 관리비용으로 평균 224만 원이 발생한다고 대책위는 설명했다. 따라서 한 달 기준 평균 25일을 근무하는 택배기사들이 올해 4인 가족 최저생계비 약 285만 원을 위해서는 사실상 509만원 이상을 벌어야 하는 셈이다. 매일 260건 이상의 택배(한 달 최소 6500건)를 배달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택배기사의 월평균 매출은 485만7000원, 순익은 234만6000원 수준에 그쳤다.

업계 평균인만큼 개별 회사 매출은 다르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올 상반기 1만7000여명의 평균 매출은 세전 월 690만원이다(세후 524만원). 업계에선 CJ대한통운 매출이 타사보다 100만원 가량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택배연대노조 관계자는 "택배산업 활성화에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물량은 계속 많아져서 하루 16시간씩 일하지만 택배비 기존 단가가 낮기 때문에 실제로 손에 쥐는 금액은 허무할 정도로 적다"며 "수입의 단면말고 조금만 깊숙이 들여다봐도 문제는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산업재해보험 가입률 19.7%···'매우 저조'
특수고용직(이하 특고) 노동자인 택배기사는 산업재해보험(이하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대상자이지만 실제 가입률은 매우 저조하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사업주들이 보험료 부담을 꺼리거나 입직 미신고 시 체벌이 가볍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산재보험법상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같은 특고 노동자와 계약한 사업주는 노무를 제공받은 날을 기준으로 내달 15일까지 입직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책위에 따르면 전국 택배기사 5만 명 중 입직신고(일을 시작한다는 신고)된 인원은 2만4845명, 이 가운데 산재보험에 가입된 택배기사는 9854명으로 겨우 19.7%에 그쳤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입직신고를 하게 되면 자동으로 산재보험에 가입, 보험료를 내야하니 부담하기 싫어서 (입직신고를)안해주려고 하거나 입직신고는 해주더라도 대필 등 강제로 '산재 적용 제외신청서'를 작성하게끔 해서 보험료 부담을 피하려고 하는 상황이 태반"이라고 꼬집었다. 더해 "택배기사가 개인사업자이기도 하니까 갑질하기도 유리해서 대리점이 '내일부터 그만둬라'라고 하면 입직신고도 안돼있으니 할 말도 없다"며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대리점이 갑이니 하라는 대로, 안하면 일을 못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산재적용 제외신청서를 쓰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산재 적용 제외신청이란 산재 적용 대상인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스스로 산재보험 가입을 거부할 경우 이를 허용하는 것이다. 산재보험 원칙으로는 사업주가 산재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사업주와 보험료를 절반씩 부과한다. 따라서 종사자인 택배기사의 경우 사업주인 대리점과 반반씩 납부해야 하는데 종사자 입장에서 보험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아래 산재 적용 제외신청 제도라는 예외를 두고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8일 배송 업무 중 사망한 택배기사 고(故) 김원종씨 또한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했다.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작성했다는 이유에서다. 근무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입직신고는 겨우 10일 전에 돼있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의 조사에서 김 씨의 산재 적용 제외신청서가 대리점 직원의 대필로 작성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씨의 산재 적용 제외신청은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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