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워치⑤] '일제 수탈'에서 '철의 실크로드'까지···한국철도 영욕의 121년
[공기업 워치⑤] '일제 수탈'에서 '철의 실크로드'까지···한국철도 영욕의 121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기간망으로 수출 대국 이끈 철도···전국 일일 생활권 실현도
물류 수송 넘어 종합문화공간으로···민자역사 출범
1899년 9월 인천 제풀포에소 열린 경인선 개통식(오른쪽)과 증기기관차.(사진=한국철도공사 누리집)
1899년 9월 인천 제풀포에소 열린 경인선 개통식(오른쪽)과 증기기관차.(사진=한국철도공사 누리집)

[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1899년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연결(33.2km)하는 경인선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으로 꼽힌다. 동시에 일제강점기 고난과 수탈의 역사와 한반도 이념 대립을 상징하기도 한다.

대한제국 정부는 스스로의 힘으로 철도건설을 이루려 했으나 자금력과 기술력 부족 등으로 1896년 미국인 모스(J.R. Morse)에게 경인철도 부설권(敷設權)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모스도 자금난으로 철도건설에 실패했고, 대륙 침략에 야망을 품고 있던 일본에 1899년 1월 부설권을 넘기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탄생하게 된다.

당시 독립신문은 경인선 철도 개통 소식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화륜거(火輪車)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중략)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경인선은 걸어서 12시간 걸리는 노량진과 제물포를 1일 2회 왕복 운행으로 90분만에 달렸다.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 도서에 따르면 개통 초기 경인선은 증기기관차 4대와 객차 6량, 화차 2량을 갖추고 하루 두 차례씩 경성과 인천을 왕복 운행했다. 이후 한강철교 완공으로 서울 서대문역까지 철길이 이어지면서 총연장 42km에 운행 횟수도 하루 5차례 늘었다.

경인선을 시작으로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 1931년 장항선, 1942년 중앙선이 잇따라 개통하게 된다. 철도 개통은 생활의 변화와 물류수송 시간 단축 등 경제발전을 가져다준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식민지 착취와 침략 등 고통과 수탈의 상징이기도 했다.

광복 전까지 일제가 우리나라 철도운영을 독점했는데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토지 강탈과 철도 부설을 위해 강제동원 된 인력만 1억명 가까이 된 것으로 알려진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벌어진 한국전쟁으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렸고 철도는 허리가 끊겨 제구실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일제강점기 땐 수탈의 상징으로 해방 후는 이념갈등의 상징으로 우리 근대의 철도는 기록하고 있다.

철도는 1960년대 들어 정부의 '경제5개년개발계획'과 함께 성장한다. 국가 기간산업 개발을 위한 산업철도 건설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고, 더불어 철도시설과 장비도 현대화한다. 기관차도 증기기관차에서 디젤기관차로 대체됐다. 증기기관차보다 견인력과 수송력이 뛰어난 디젤기관차 도입으로 국내 물류와 인력 수송이 빨라져 산업화를 앞당기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70년대 철도를 타고 휴가를 가는 모습.(사진=한국철도공사 누리집)
70년대 철도를 타고 휴가를 가는 모습.(사진=한국철도공사 누리집)

본격적인 경제발전이 시작한 1970년. 철도는 콘테이너 화물 수송, 석탄과 석유 등 국가기간 수송망으로 기능을 다하며 수출 대국으로 성장을 이끈다. 철도는 이후 1973년 중앙선과 태백선의 전철화, 1974년 수도권 전철의 개통으로 대중교통의 혁신을 불러왔다. 대중교통의 혁신으로 '서울-부산' 간을 5시간 이내로 주파하면서 '전국 일일 생활권'을 실현했다.

철도는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자동차 교통 발전으로 경영의 타격을 입게 된다. 철도 당국인 철도청은 경영합리화를 위해 장기 계획을 수립하는데, 여기서 탄생한 것이 '신(新) 철도문화'다. 대표적으로 서울역 민자역사를 들 수 있다. 1989년 개관한 서울역 민자역사는 철도가 단순 승객 운송이 아닌 쇼핑과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종합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2008년에는 서울 왕십리역 민자역사, 2010년에는 청량리역 민자역사가 준공됐다.

이후 철도청은 2005년 1월 운행 부문을 담당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건설 부문을 담당하든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분리된다.

철도는 통일 한반도에서 국가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에는 이견이 없다. 교통수단 가운데 장거리 고속 대량 소송이 철도가 유일하고, 통일 후 한반도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및 중국횡단철도(TCR) 등과 연결되는 '철의 실크로드'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국철도공사는 지난해 러시아 철도공사와 협약을 맺는 등 우리나라 철도의 대륙 진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관련기사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