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뒤집어지는 경제이론들
[홍승희 칼럼] 뒤집어지는 경제이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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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팬데믹현상과 그 영향으로 나타나는 각종 상황들은 여러 학문 분야에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그 범위는 의학 관련 분야나 공공의료 부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고 국가안보의 의미를 재설정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의 정의를 전 인류가 거듭 성찰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학이나 경영 이론에서도 이제까지 당연한 듯 신봉되어왔던 이론들에 의심이 커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민영화 확대의 문제점, 노동유연화의 함정, 글로벌경영 신화의 타격 등이 두드러진다. 그 결과 그간 한국 정부와 언론이 주로 수용해왔던 미국식 모델들이 무력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의료 및 의료보험 민영화에 주력해왔던 미국이 뛰어난 의학수준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대응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의료보험 혜택에서 제외된 국민의 숫자가 너무 많다보니 너무 비싼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초기 증상자들이 방역망 밖에 머물며 수많은 수퍼전파자들을 양산해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가하면 직장으로부터 신분보장을 받을 수 없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직장의 임시 폐쇄만으로도 생계의 위협에 직면하며 사회불안을 증폭시켰다. 이런 불안심리에 인종차별 사건이 기름을 끼얹으며 미국 전역에서의 시위를 폭동으로 전화시켰다.

세계적 기업의 대다수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미국이 한동안 진단키트며 마스크 생산에 차질을 빚었고 느닷없는 휴지사재기가 전세계적인 ‘현상’을 만들어냈던 사실은 결국 글로벌 밸류체인에 의존하던 생산시스템의 허약한 일면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세계의 값싼 노동력을 찾아 생산기지를 흩어놓음으로써 자국 내 소비자들을 행복하게 만든 듯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국경봉쇄의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자 사소한 생필품의 수급조차 위태롭게 만든 것이다.

여기저기서 봉쇄조치들이 잇따르면서 생산활동도, 소비활동도 위축되자 각국이 미처 팬데믹 상황이 진정되기도 전에 앞 다투어 경제활동 재개에 나서고 있으며 각국 정부는 서둘러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고 증가된 생계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대국민 긴급지원금들을 경쟁적으로 풀고 있다. 평소 같으면 이는 당연히 포퓰리즘으로 매도당했겠지만 지금의 사태는 전시에 비견되는 긴급상황인 만큼 한국 야당과 언론을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에서도 이를 비판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

이는 일단 고사 위기에 처한 경기에 숨을 불어넣는 긴급처방의 성격이 짙지만 이제까지 재정이 기업에 쏠렸던 것을 직접 국민 개개인에게 분배함으로써 얼어붙은 소비를 되살릴 불씨로 삼자는 것이다. 당장 한국에서도 중앙정부의 지원금과 지자체의 지원금 등이 가계별로 몇십만원에서 가족수에 따라서는 백 몇 십만 원까지 지원됨으로써 영세상인 등에게 눈에 띄는 긍정적 효과들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일단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간에는 대기업 위주로 지원하면 그 결과로 돈이 중소기업으로, 더 나아가 노동자 계층으로 흘러내려가 국민 다수가 혜택을 본다는 소위 낙수효과가 당연한 이치인양 홍보돼 왔으나 최근 상당기간 동안 그 효과는 미미했고 기업이 커지는 것과는 무관하게 국민 대다수에게 분배의 실감은 없었다. 낙수효과가 허구라는 인식이 커져가던 차에 이번 긴급재난 지원금의 분배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자 그 이론에 대한 의심은 사실로 굳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긴급재난 지원금의 지급과 아울러 근래 전 국민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를 일각에서는 반자본주의로 매도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이는 자본주의의 수명 연장을 위한 처방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함께 이미 전 세계적으로 심각해진 양극화 현상은 사회 발전의 동력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상실된 운동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균형잡기를 통한 다수의 소비여력 확대는 불가피한 선택이 된 것이다.

전 국민 기본소득 보장은 달리 보면 국가를 하나의 기업으로 상정하고 전 국민이 주주로서 배당을 받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나라는 잘 살게 됐지만 국민은 가난하다는 모순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기업이 활동할 기초 토대를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판국에 미국의 사례를 눈앞에서 보면서도 노동유연화를 정부에 주문하는 재계 일각의 시대를 잊은 발상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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