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리인하 카드를 다 쓴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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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기준금리는 사실 동결 예상이 우세했었다. 예상은 전날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보기좋게 비껴갔다. 보통 금통위 개최 2~3일전 발표되는 금융투자협회 설문조사에서 금리동결을 예상한 채권 관련 종사자들의 응답이 80%에 육박했다.

금통위의 결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로 3월 '0%대 기준금리' 시대에 들어선지 2개월 만에 또 추가 금리인하(0.75%→0.50%) 단행이었다.

같은 날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률 수정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3%p 하향조정한 -0.2%를 제시한 것도 예상 밖이었다. 그간 한은은 민간 경제연구원이나 증권사 리서치센터, 신용평가기관 보다 높은 경제 전망률 수치를 제시해 왔다. 다른 곳도 아닌 중앙은행이 비관적인 수치를 발표하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제 주체들의 인식과 심리는 더 가라앉을 수밖에 없어서다.

더구나 이번 성장률 전망치에는 최근 들어 다시 고조되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 리스크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예정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로 미중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올해 성장률이 더 추락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으로 우리 경제 성장률이 0.4%p 떨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지금의 경제 위기는 전시(戰時) 상황과 같다며 전시재정 편성을 주문했다. 코로나19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재정이든 통화든 국가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다 써달라는 당부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해야 한다'는 한은의 의지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한은에게 묻고 싶다. 과연 지금 추가 금리인하가 필요했는지. 이미 한은은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누누히 반대의사를 밝혔던 SPV(특수목적기구)까지 참여했다. 정부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추진에 발맞춰 국고채 매입까지 시사했다.

여기서 금리를 또 끌어내린 것은 성급한 처사 아니었나 하는 지적도 나온다. 금리인하가 되레 원화 평가절하, 외국자본 유출, 부동산 시장 자극 등 부작용만 일으킬 수 있다는 쓴소리다.

특히 코로나19 충격에서 이른바 '좀비기업'을 더 연명케 하고 이에 따른 생산 증가(공급 증가)→물가 상승 압력 하락→소비 이연(수요 부진)을 촉발, 한은이 경기 부양을 위해 또 금리를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좀비기업은 계속 가동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자칫 한은이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을 초래했다는 비판에도 직면할 수 있다.

이미 기준금리가 실효하한까지 도달했다는 관측이 팽배하다. 전염병 확산은 우리나라만 잘 막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모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2차 유행기를 가졌다는 점에서 코로나19는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다시 위기가 닥쳤을 때 한은이 더 쓸 카드가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운용의 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지금은 좀 더 지켜봤어도 됐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새로 합류한 금통위 위원에 친정부 성향이 포진해 압박(?)을 받은 결정은 아니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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