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한은, 결국 SPV 설립···저신용등급 회사채·CP 매입한다
정부-한은, 결국 SPV 설립···저신용등급 회사채·CP 매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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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자리 위기극복을 위한 고용·기업 안정 대책'
한은, 미 연준 벤치마킹 SPV 활용···20조 유동성 공급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정부와 한국은행이 특수목적기구(SPV)를 설립해 저신용등급을 포함 회사채·기업어음(CP)·단기사채 등을 매입하기로 했다. 한은은 직접적인 SPV 설립을 통한 회사채와 CP 매입이 불가능하다고 누누히 강조해 왔지만, 국책은행이 SPV를 설립하고 한은이 여기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한은이 역대급 '돈 풀기'에 나섰지만 시중에 자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2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일자리 위기극복을 위한 고용·기업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정부가 회사채시장 안정을 위해 SPV를 설립하고 저신용등급을 포함한 회사채·CP·단기 사채 등을 매입한다는 부분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 회사채담보부증권(P-CBO) 등 기존 정책이 지원하지 않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시장 "한은이 기업 돈맥경화 해소해야" 아우성 = 한은에 따르면 오는 4월부터 12월 중 만기가 도래하는 일반기업 발행 회사채 규모는 20조6000억원, CP 규모는 15조4000억원으로 총 36조원이다. 이중 2분기(4~6월)에 회사채 8조9000억원, CP 11조4000억원 등 20조3000억원의 만기가 도래한다.

당장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를 갚으려면 기업들은 새 회사채를 발행해야 한다. 하지만 자금 시장 경색이 심각해지면서 자금난이 더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 경제까지 위협할 정도로 확산되면서 안정적인 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하던 회사채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어서다.

정부와 한은이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정부는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 1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 등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한은은 사상 처음으로 한도가 없는 전액공급방식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에 나섰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사실상 무제한 현금 공급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외에도 한은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0.75%로 전격 인하한 뒤 3월 중순 미국과 600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 체결에 성공했고, 사상 처음으로 은행 외에 증권사와 보험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 회사채를 담보로 특별대출을 내주기로 했다. 한은은 RP 매매 대상도 국채와 정부 보증채,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증권(MBS), 은행채 등에서 공기업 특수채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은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처럼 직접 자금시장의 불을 끄는 소방수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코로나19라는 역대급 위기 속에서 중앙은행이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쓴소리였다.

사진=한국은행
사진=한국은행

◆한은, 사상 첫 연준式 지원···SPV에 20조 공급 =이번 정부안은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정책금융기관(산업은행)이 참여하고, 한은은 SPV에 대한 유동성을 지원(국책은행 통한 저리 대출)하는 방식이다. 한은 관계자는 "국가 재정지원을 바탕으로 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하고 한은은 유동성 지원을 활용해 20조원을 공급할 방침"이라며 "조만간 정부와 구체적인 매입기구 구조와 매입 범위 등을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간 한은은 회사채·CP 직매입이 불가능 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무엇보다 한은법이 문제가 됐다. 현행 한은법 제68조는 공개시장에서의 매매 대상 증권을 '자유롭게 유통되고 발행 조건이 완전히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한정해 회사채 및 CP 등에 대한 매입을 제한했다. 또 같은법 79조상 한은의 민간 발행 채권 매입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입장이 미묘하게 바뀐 것은 이달 금융통화위원회부터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9일 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미 연준이 그랬듯 정부 지급보증 아래 SPV를 설립하는 것은 상당히 효과가 크다"며 도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SPV를 통한 회사채 매입은 미 연준의 지원 방안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미국은 정부가 총 지원금의 10% 수준의 출자금으로 SPV를 설립하고, 나머지 90%는 연준이 SPV에 대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직접 SPV를 설립하는 것도 아니고 우회적인 매입이기 때문에 직접매입을 제한한 한은법과도 배치되지 않는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법 80조는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중대한 애로'가 있으면 정부 의견을 들은 후 한은이 금융업 등 영리기업에 대출을 해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 법에 근거해 SPV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SPV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한은의 유동성 지원이 회사채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또 정부 지원액을 기반으로 몇 배의 레버리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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