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과당 경쟁' 정비사업 메스···사업장 줄줄이 '얼음'
정부, '과당 경쟁' 정비사업 메스···사업장 줄줄이 '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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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3주구·갈현1구역 여파···대형건설사, 눈치 보기 급급
30일 찾은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사진=이진희 기자)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사진=이진희 기자)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정부가 최근 과당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에 대해 특별 점검에 나서자, 건설사들은 난감한 기색이다. 과거와 달리 적법한 수준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지만, 칼을 빼든 정부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재건축과 은평구 갈현1구역 재개발 등 알짜배기 사업장이 '새판짜기'에 들어가며 먹거리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졌으나, 이마저도 '눈치싸움'이 심화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수주 물량 감소, 서울 내 공급 부족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비사업 관련 규제 완화라는 '당근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한국감정원으로 꾸려진 합동점검반은 오는 15일까지 용산구 한남3구역 등 정비사업장을 특별점검할 예정이다.

변호사, 회계사, 건설 분야별 기술전문가 등이 합류한 합동점검반은 정비사업 관리부터 회계처리, 정보공개 등 일반적 사항은 물론 최근 과열 기미를 보이는 수주 경쟁과 관련한 과정도 들여다보기로 했다.

시는 수주전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편법 사안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검토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등을 위반하는 건설사는 입찰자격 박탈과 함께 입찰보증금까지 몰수된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용산구 한남3구역이다. 이 사업장은 총사업비 7조원, 공사비 1조9000억원이 투입되는 강북 최대 재개발 지역인 만큼, 수년 전부터 건설사의 출혈 경쟁이 예고됐다. 

이번 점검의 쟁점은 수주전에 뛰어든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GS건설 등 3사가 제안한 조건이 불법에 해당하는가이다. 

3개 건설사 모두 조합원에게 법정한도를 넘어선 이주비 지원을 약속한 데다 임대아파트 제로 단지 조성(대림산업), 인테리어비용 5000만원 지원(현대건설), 분양가상한제 미적용 시 3.3㎡당 7200만원 분양가 보장(GS건설)을 각각 제안한 상태다.

적법한 테두리 내에서 조건을 제시했다는 이들 업체와 달리 국토부와 서울시는 곳곳에 위법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 현장 점검에 돌입할 예정이다.

업계는 이번 점검 결과에 따른 파장이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재건축과 은평구 갈현1구역 재개발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입지가 좋은 두 사업장이 조만간 새로운 주인 찾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서 HDC현대산업개발과 수의계약을 맺은 반포3주구는 최근 현 시공사를 반대하는 새 조합집행부가 선출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신임 조합장은 연내 HDC현대산업개발의 시공권을 박탈하고, 내년 4월 새 시공사를 선정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또다시 열띤 수주전이 펼쳐질 공산이 크다.

갈현1구역의 상황도 비슷하다. 재개발 조합이 대위원회를 통해 현대건설의 입찰을 무효로 하고 입찰보증금을 몰수하겠다고 결의하면서다. 롯데건설과 현대건설만 입찰에 참여해 2파전 구도가 형성된 터라 현대건설의 입찰무효로 이번 입찰은 자동 유찰됐다. 

해당 조합은 오는 13일 현장설명회를 열고, 내년 1월9일 입찰마감을 거쳐 사업을 재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반포3주구와 갈현1구역 모두 조합의 결정에 불복하는 건설사와의 소송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새 판을 짜겠다는 조합의 입장이 확고한 만큼 주인 없는 물량으로 시장에 나올 전망이다.

문제는 정비사업장을 향한 정부의 칼날에 시장 전반적인 분위기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점이다. 수주 가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적극적으로 수주전에 임해야 하지만 현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건설사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강화된 이후 건설사들이 처벌받은 사례가 없는 가운데, 대다수의 건설사가 부정당 업체라는 첫 타자가 될까봐 몸을 사리는 눈치다. 

실제 지난달 31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 한남하이츠 재건축 사업지는 GS건설만 입찰해 수주전이 유찰됐다. 한남3구역의 특별점검 영향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GS건설과의 수주전을 예고했던 현대건설이 홍보를 접고 발을 뺀 데에는 점검에 대한 부담감이 일부분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과징금 또는 시공사 선정 취소 등의 조치를 받는 첫 타자가 되면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면서 "서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기 위해 경쟁을 하다 보면 법의 테두리를 아슬하게 넘나들 수 있다. 규제 완화를 할 게 아니라면 차라리 엄격한 감시를 통해 클린한 시장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서로를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공정한 시장 형성과는 별개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제언도 나온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부장은 "정비사업 관련 법이 강화됐기 때문에 부정당 업체로 걸리게 되면 과징금, 입찰 제한 등 타격이 크다"며 "서울 도심에 공급되는 물량은 정비사업의 비중이 큰데, 이 물량이 예전만큼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경쟁 과열도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규제는 결국 공급 부족을 초래할 수 있어, 규제로 시장을 조절하기보다는 규제 완화를 통해 집값 안정을 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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