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항 칼럼] 위기관리는 '정명(正名)'부터
[김진항 칼럼] 위기관리는 '정명(正名)'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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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예비역 육군소장)
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예비역 육군소장)

유사한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효율적 업무처리가 가능하다. 사고·재해·재난과 위기에 대한 '정명(正名)'이 필요한 이유다. 

어떤 원인에 의해 시스템 이상이 생겼을 때, 시스템 자체 능력으로 처리할 수 있으면 사고이고, 시스템 자체 해결이 불가능하고 상위 시스템이 필요하면 재난이다. 그런데 사고냐 재난이냐 문제는 상대적이어서, 하급기관은 재난이지만 상급기관에선 사고로 간주되기도 한다. 재난은 발생한 사고와 관련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관련이 있다. 

아무리 큰 사건이 발생해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재난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시베리아 벌판에 진도 8 이상 지진이 발생해도,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없다면 재난이 아니다. 

재난과 유사한 개념으로 재해가 있다. 재해는 주로 자연의 영향으로 발생한 피해를 뜻하는 말인데, 재난보다 조금 더 객관적 표현으로 일본에서 많이 사용한다. 사고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결과이며, 고의적·비고의적 사고를 모두 망라한다. 

즉, 사고는 사람이 고의적·비고의적으로 저지른 잘못에 의해 시스템의 정상작동을 방해한 것이고, 재해는 자연이 원인이 되어 인간 생활에 필요한 환경 및 시스템에 나쁜 영향을 준다. 이런 두 가지가 사람의 생존·발전에 어려움을 주는 것이 재난이다.

재난과 위기는 어떤 관계인가? 위기란 유기체의 핵심 가치가 위험에 처한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재난이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발생한 재난이 개인이나 조직의 핵심 가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위기가 아니다. 재난이 어떤 유기체에게는 위기지만 다른 유기체에겐 위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위기 역시 상대적이다. 어떤 신용카드 회사는 개인정보 유출로 위기가 발생했지만, 카드 배달 업무를 하는 회사는 오히려 기회가 된 적도 있다. 특수한 경우지만 세상일은 다 그렇다. 

재난관리와 위기관리를 비교해보면, 재난관리는 발생한 재난을 최소 희생으로 원상회복하거나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반면 위기관리는 재난관리 과정을 포함해, 재난이 미치는 영향이 관리 주체의 핵심적 가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다. 위기관리가 재난관리보다 상위 개념인 셈이다. 

재난 발생 현장에서 관리하고 지휘하는 기관은 주로 위기관리도 맡게 된다. 세월호가 기울어 좌초할 위기에 놓였을 때, 선장의 핵심 가치는 '승객의 안전'이었다.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승객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세월호 사건은 해상교통사고에 그쳤을 것이다. 

선장의 입장에서 배가 기울어 좌초하는 순간은 위기다. 그 때 세월호의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올바른 위기관리, 즉 자기보호본능에서 벗어나 '필사즉생(必死卽生)' 전략으로 승객을 모두 구한 뒤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렸거나, 배와 함께 최후를 맞았다면 성공적 위기관리였다고 볼 수 있다.  

선장의 무책임으로 많은 승객이 배에 남아있는 상태로 침몰한 세월호 참사는 결국 국가적 재난이자 위기로 발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장에서는 재난관리를, 정부의 책임부서인 중앙재난안전대책 본부는 위기관리를 해야 했다. 

급박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신속한 현장지휘소가 만들어지고 여러 기능을 가진 전문 기관이 참여하되 이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할 지휘기구가 만들어 졌어야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 본부에선 현장지휘소에 필요한 자원을 신속히 지원할 수 있게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국가적 핵심가치가 손상되지 않도록 관리했어야 마땅하다. 그러지 못해서 많은 지탄과 원망을 들었다. 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사고·재해·재난·위기에 대한 이해는 아주 중요하다. 올바르게 정명이 되어야 각급 기관의 임무와 역할이 분명하게 정해진다. 그에 맞춰 평소 준비를 철저해 해둔다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고 설사 사고가 나도 위기까지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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