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트럼프 감세와 사다리
[홍승희 칼럼] 트럼프 감세와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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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최근 계룡대를 방문해 육해공 3군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우리 사회가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 관심을 모았다. 그렇게 고인 물이 되어가는 사회에는 활력이 사라지고 체념과 허무가 휩쓸게 된다.

가진 것 없는 이들만 그런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는 게 아니다. 최근 활발한 활동을 벌여나가던 아이돌 가수의 자살 이후 공개된 유서를 보면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은 허무가 아닌가 싶었다. 젊고 유망한 아티스트의 존재론적 질문에 답해 줄 어른은 그 주변에 없었고 심지어 그의 고민을 함께 나눌 이들조차 보이지 않는 듯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사회엔 부정적 감정들만 넘실거릴 뿐 그런 감정을 다스리고 보듬어 안을 ‘생각’이 실종돼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고민하고 답을 구해가는 인내도 가르치고 배우지 않으며 단지 정해 놓은 답안지 쓰기만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 내던져져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우리 사회가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 길이 과연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서로 묻지 않는다. 그 결과는 이제껏 사회가 던져준 답안지에 의심 없이 충실할수록 우리 사회가 헤어 나오기 힘든 늪지로 화해 우리의 발목을 아래로 잡아끌고 있다.

이런 현상은 물론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분배 기능을 잃은 많은 나라에서 볼 수 있으며 한국이 자본주의의 교과서로 여기는 미국 또한 그 대열의 선두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요즘 미국은 31년만에 최대라는 트럼프의 감세안이 의회를 통과해 당장 미국의 경제성장 전망이 밝아졌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그런 반면 주로 부자들에게만 그 감세 혜택이 돌아가는 데 대한 미국민 다수의 분노도 커지고 있는 모양이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그로 인해 연간 약 1천5백만 달러(우리 돈 약 160억 원)의 감세로 인한 이득을 얻게 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 소식을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유쾌하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국민들은 가난해지는 역설이 현실화할 판이다. 당장 기업활동이 활발하면 일자리가 느는 효과는 있겠지만 그렇게 는 일자리를 만든 기업과 기업인들이 돈을 버는 만큼 노동자들에게도 그 혜택이 나누어질 구조를 이번 트럼프 감세안은 원천차단하고 나서는 꼴이다. 의료보장의 후퇴와 부자감세안 등을 보면 트럼프가 보는 계급사회적 로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 18세만 되면 성인으로서 ‘독립’하는 게 당연하던 미국 사회에 요즘 갈수록 독립을 미루는 캥거루족들이 늘어난다는 보도도 있었다. 비싼 대학 학비는 아르바이트로 벌어서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전통을 따라 일찍 독립한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막대한 빚을 지고 있어서 경우에 따라 향후 30년 정도, 즉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간 내내 그 빚을 갚는 데 진을 빼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 빚을 덜 지려다보면 본업인 학업은 뒷전이고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뛰면서 돈벌이에 지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깊은 속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이 그렇다면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할 젊은이들 또한 많을 테고 그럴수록 사회적 계층이동은 불가능해져만 갈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도 그런 미국을 참 너무 많이 닮아간다. 부익부 빈익빈 문제는 이미 오래된 논제이지만 그 못잖게 젊은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이미 큰 빚을 지고 시작해야 하는 현실까지 미국을 닮아갈 게 뭐란 말인가. 그렇다고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전선에 나서기엔 한국사회가 지나치게 학벌을 요구하는 사회라는 문제가 있다.

아마도 가계부채의 일부는 자녀 등록금 마련을 위해 늘어난 부분일 공산이 크다. 자녀 혼자 등록금을 마련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부모들은 자신들이 부모의 지원으로 대학을 다녔던 기억 때문에라도 자식 학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졌을 테니까.

대학 등록금을 최대한 학자금 대출로 메꾸고 졸업하면 약 3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된다던가. 상당수 직장 초임은 2백만 원에도 못 미친다는 데 그만한 빚을 짊어지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처음 배우는 감정이 무엇일까.

그나마 취업이라도 제때 하면 좋지만 ‘취업재수’는 기본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졸업 후 1년 이상 취업준비에 매달리다보면 세상이 어떤 빛깔로 보일까. 그런 ’독립‘도 못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들의 미래는 또 어떤 색일까. 그렇게 우리 사회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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