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리아세일페스타, 누구 위해 열리나?
[기자수첩] 코리아세일페스타, 누구 위해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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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태희 기자] 이것저것 한데 모아 '국내 최대'를 내세우면 통할 걸로 여겼나보다. 정부가 주도한 '코리아세일페스타' 얘기다.

메이플 시럽과 초콜릿, 휘핑크림, 딸기잼을 같은 비율로 유리컵 안에 넣고 휘저어보자. 달콤하기 그지없는 재료들이지만 도무지 섞이지 않아 먹기 고역스러울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어울린다.

코리아세일페스타는 2015년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는 당시 내수를 살리자며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를 모방한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를 기획했다. 이듬해 코리아세일페스타로 이름을 바꾼 이 행사를 정부는 '국내 최대 쇼핑관광축제'라고 강조한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코리아세일페스타의 실효성에 유통업계와 소비자들은 의문을 품고 있다. 특히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온라인쇼핑몰 등은 정부 주도 행사여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힘을 보탤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더 많은 매출을 거두기 위해 서로 으르렁거렸던 유통업계를 한자리에 모았으니 정부 입장에서 '획기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국내 최대 쇼핑관광축제란 수식어까지 붙여서 더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할인행사는 '일상'이 됐다. 이미 유통업계는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1년 내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백화점은 정기세일과 상시 이벤트를 연다. 대형마트는 매주 행사상품을 준비하고, 자체 브랜드(PB)도 선보였다. 온라인쇼핑몰은 적자를 내면서까지 '최저가' 경쟁을 벌인다. TV홈쇼핑에선 매일 "이 가격, 오늘이 마지막입니다"를 외친다. 소비자들은 할인에 면역력이 생겼다.

그렇다고 정부가 가격을 내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유통업체는 판매수수료로 운영되기 때문에 제조사에서 공급가격을 내리지 않는 한 할인율은 고정돼 있다. 유통업체가 상품을 헐값에 팔 수 없는 노릇이다.

소비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준비한 코리아세일페스타에 유통업계와 소비자 모두 등을 돌려버렸다. 계속 이어갈 것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필요가 있다.

먼저 시기와 대상을 다시 짚어봐야 한다. 내국인과 외국인을 모두 잡겠다는 욕심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행사로 전락해버렸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시기도 문제다.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시작되는 10월1일은 중국의 '국경절'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드는 시점을 노린 셈인데, 올해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 때문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올해는 한국의 추석과 중국 중추절이 겹쳤다. 유통업계에서 추석은 소비심리가 살아나는 '대목'으로 꼽힌다. 올해 코리아세일페스타는 추석 연휴랑 맞물려 취지가 흐려졌다.

면세점과 온라인쇼핑몰, 전통시장 등 소비 형태가 다른 곳들을 묶은 것도 무리로 보인다. 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큰손'이다. 온라인쇼핑 시장에선 이미 11월 대규모 할인 문화가 자리 잡았다. 11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일부 상품기획자(MD)들은 1년 전부터 상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시장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 다르다.

'큰 게 좋다'는 사고방식은 똑똑한 소비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내수 진작을 위해서는 규모 확대에 앞서 소비 행태를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정책을 짜내야 한다. 먹을 수 없는 판을 벌여 놓고 자율 아닌 자율에 맡기는 정책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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