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연금제 '절름발이' 전락 우려된다
기업연금제 '절름발이' 전락 우려된다
  • 임상연
  • 승인 2003.06.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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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투신 등 배제돼 금융권역별 형평성 문제 초래
법안, 자산운용합법과 배치 … 노사정 합의도 어려울 듯

최근 기업연금제 도입이 금융업계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연금제 도입은 84조원에 달하는 신규 금융시장이 형성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금융사 입장에서 보면 최대 개척지와도 같다. 따라서 勞使는 물론 은행 보험 증권 투신등 금융기관들의 관심과 기대가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2001년 노사정에서 처음으로 논의된 이후 2년만에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기업연금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최근 노동부가 마련한 관련법안을 놓고 금융권은 물론 노사간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업계에서는 관련법안에 대해 노동부가 연금관리 위주로 법안의 틀을 짜면서 절름발이로 전락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기초 법안 문제 산적
노동부가 기업연금제(또는 퇴직연금제) 도입을 위해 마련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령(안)’을 놓고 금융권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 것은 금융권역별 형평성 문제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령(안)’에 명시된 퇴직연금 및 개인퇴직저축계좌를 취급할 수 있는 금융기관에 증권 및 투신업계가 배제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이 법령(안)에 따르면 사업자(기업)는 보험업법 제19조의 2의 규정에 의한 보험계약이나 신탁업법 시행령 제3조2항1호의 규정에 의한 특정금전신탁계약을 통해서만 금융기관과 자산관리업무의 위탁계약을 체결토록 명시하고 있다(제13조). 즉, 퇴직연금의 운용 및 사무수탁업무 등을 보험사나 은행에만 국한시킨 것이다.(‘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령(안)’전문 요약 참조)

이 법령(안)대로 내년 7월 기업연금제가 도입될 경우 증권 및 투신업계는 84조원에 달하는 관련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미 기업연금제 도입에 맞춰 준비작업을 진행해온 일부 대형증권사와 투신사들은 허탈해 하는 분위기다.

금융권역별 형평성 문제 외에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령(안)’은 오는 9월 동시에 상정될 자산운용통합법과 상치되는 점이 많고 금융기관에 대한 이중규제 문제도 내포돼 있다. 이 법령(안)에 따르면 퇴직연금사업자의 인가 취소 및 감독기능,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 등에 대해 노동부가 직접 규제할 수 있도록 해놨다.
실례로 법령(안)에서는 운용실적에 따라 근로자의 수급액이 결정되는 확정기여형(갹출형) 퇴직연금을 금융기관이 취급하기 위해서는 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퇴직연금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시정, 개선 또는 인가 취소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제4장12조 및 제6장21조)하고 있다. 또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해서도 감독당국의 기준과 별도로 노동부령이 정하는 건전한 재무상태를 갖추도록 명시하고 있다(제10조2항). 물론 노동부장관의 이 같은 권한은 지방노동관서의 장이나 금융감독위원회 등에 위임 또는 위탁할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달았다. 하지만 법안을 마련한 노동부를 중심으로 기업연금제가 실시될 경우 규제 감독 이원화에 따른 혼선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는 재경부가 통합법을 통해 은행 보험 투신 등으로 분산된 기존 자산운용시장을 동일한 기준 아래 단일한 규제틀로 묶으려는 취지와도 상반되는 것이다. 또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이중규제에 따른 업무혼선 등을 초래할 공산도 크다.
특히 최근 재경부가 은행권의 금전신탁을 단계적으로 불허키로 방침을 정한 상태여서 은행이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퇴직연금을 취급하게 될 경우 향후 법령개정 지연, 업무이전 등 많은 문제점도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사정합의 등 입법 산넘어 산
재경부도 법령(안) 검토작업에서 이 같은 문제점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노동부와 재경부 등 금융당국은 이 법령(안)을 토대로 공청회, 전문가 포럼을 개최해 조문 수정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다하지만 조문 수정작업 후에도 노사정 합의 도출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의 큰 틀이 노조간 이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노조의 요구와 달리 법안은 확정급부형 퇴직연금 뿐만 아니라 확정기여형 퇴직연금도 수용하고 있다. 또 4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기업연금제 즉시 허용 요구도 아직 제대로 준비가 안되고 공란으로 남은 상태. 따라서 이에 대한 노사 및 정부당국간 또다시 지루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내년 6월 총선도 문제다. 시행연도인 내년에 총선이 치러진다는 점에서 입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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