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현대사회와 신화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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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최근 미국 CNN 방송이 북한 주민들을 인터뷰한 동영상을 내보냈다. 그 가운데 흥미를 끄는 한 대목은 러시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을 굳이 백두산 인근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북한 관광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북한의 로열패밀리를 상징하는 ‘백두혈통’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터인데 그 속에서 이미 김씨 일가의 신화화가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관심을 끈다. 대개의 독재정권이 장기집권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화화가 진행되는 한 전형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대사회에서도 이 같은 집권자 집단에 관한 신화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집권자의 가계를 신격화하는 사회는 그만큼 현대사회의 변화와 동떨어진 폐쇄사회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북한이 기술적으로는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대량의 해커조직을 양성해 개방사회를 향한 사이버 공격을 여기저기서 벌이고 있다 해도, 휴대폰을 자체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고 해도 주민들의 정보는 여전히 인터넷이 아닌 북한 사회의 내부망인 인트라넷의 범위 안에서만 생산 소비되고 있다. 사고의 개방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태에서 복제가 됐든 다른 무엇이 됐든 기술개발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주민의 사고는 갇혀 있기 때문에 앞서 본 사례와 같은 신화화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신화화 작업은 북한 같은 폐쇄된 사회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한에서도 한동안 정치 권력자를 미화하는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신화화 작업은 벌어졌었다. 당시의 한국 사회도 실상은 꽤 닫힌 사회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신화화가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 언론의 자발적 아부를 통해 실현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자본주의가 고도화해 나갈수록 글로벌화도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치권력을 미화하기 위한 신화화는 사라지거나 감소한다. 대신 자본이 기획하고 각종 미디어가 확대재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수많은 유사 영웅이나 인기 연예인들의 신화화도 나타난다. 개인미디어까지 나타나며 다양한 매체들이 난립하는 시기에는 오히려 정치권력은 신화적 껍질이 벗겨지는 반면 대중적 관심을 모으는 연예 오락이나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미담’ 등의 형태로 신화화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떤 사회에서든 반대세력이 과도하게 약화되면 그 만큼의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되는 세력은 그에 비례해서 신화화의 유혹 또한 크게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당과 야당이 있는 정치구조를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 유혹에 약한 인간의 본성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한국사회는 여소야대 상황이어서 권력의 힘이 야당에 더 쏠려있는 만큼 야당이 여당을 견제해야 하는 관계와는 어긋난다. 그나마 야당이 여럿이다보니 단지 권력이 지극히 분산된 상태 정도로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스스로의 힘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거나 혹은 모르는 체 하면서 약자의 역할극을 하는 야당이 자칫 국가의 미래를 향한 걸음에 발목잡기를 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의 제1야당은 장기간 여당 노릇만 했기에 야당의 역할에 대한 오해가 있지 않은가 싶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힘이 약한 야당이 하던 방식을 여당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야당이 똑같이 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제대로 해나갈 수 없을 테니까. 그만큼 국민의 선택이 배반당하는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다음 선거에서 국민이 그 배반당한 사실에 정확히 대답할 지혜가 있다면 그나마 오래 갈 수 없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오랜 기간 독재를 미화하는 신화화 작업에 세뇌된 세대를 많이 품고 있는 노령화사회, 그것도 초고속으로 노령사회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세대를 젊은 세대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태어나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기억할 수 있는 대통령은 한 사람이었던 세대도 있으니 당연히 대통령은 그 한 사람이어야 하고 죽지도 않을 불사의 신처럼 무의식에 각인됐던 시절을 건넌 세대에게 여와 야가 뒤바뀌기도 하는 지금의 정치는 그저 혼돈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단골 레퍼토리가 지금도 국회에서, 미디어에서 반복되어 흘러나온다. 신화가 어떻게 조작되었든 그 영향은 이리도 질기게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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