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종교와 과학의 차이
[홍승희 칼럼] 종교와 과학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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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요즘 과학과 종교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한 장관 후보자가 과학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소위 창조론이라는 종교적 믿음을 ‘창조과학’이라 포장하는 일단의 학자군에 속해 있는 모양이다.

우주의 생성도, 인간의 탄생도 모두 ‘창조’의 섭리로 해석하는 건 물론 종교적 신념으로서 그 나름대로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준다 쳐도 거기다 ‘과학’을 뜯어 붙이는 것은 어색하다.

그들이 믿는 종교는 ‘의심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과학은 기본이 ‘의심’에서 출발한다. 그런 그 둘을 억지로 뭉쳐 놓아버리면 과학의 본질인 ‘의심’은 발붙일 곳이 없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과학적 검증’이라는 게 또다시 등장해 새로운 변화의 발목을 잡으려 든다는 점이다. 80년대 우리 사회에서 한동안 인문학 분야까지 ‘과학’이라는 단어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사회과학’이라는 말로 과학을 종교화한 학문 영역이 존재한다.

경제학에서도 ‘과학적 검증’을 중시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표현은 한 야당대표의 국회 연설에도 등장했는데, 그들이 말하는 ‘과학적 검증’론이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이 과학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니 폐기하라는 주문이다. 그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유럽보다 미국이 더 잘 살고 있으니 유럽식 복지국가로 가면 안 되고 미국식 신자본주의로 나아가자는 발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들이 보기에 미국이 가장 잘 살고 있으니 미국이 택한 방법론은 검증된 것이고 따라서 ‘과학’이 된다는 것인 모양이다. 미국이 가진 막대한 자원도 관심 없고, 그들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자원시장을 휩쓸고 다니는 현실에 대해서도 무시한 채 오로지 미국이 제일 잘 사는 나라이니 그 나라 경제정책의 이론적 토대가 된 학문만이 과학적 검증을 마쳤다는 기막히게 단순한 발상이다.

과학이라고 주장하려면 최소한 과학은 영원히 최종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부터 인식해야 마땅할 터이지만 그들에게 그런 근본적인 인식의 문제는 논외다. 종교는 이미 결론이 난 것을 무조건 믿으라고 요구하지만 과학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의 학문’이다.

그래야 뉴턴의 진리를 딛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나오고 더 나아가 현대과학의 빅뱅이론이며 카오스이론이며 비선형론, 나노과학 등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뉴턴을 영구불변의 진리라고 믿었다면 그런 과학적 성취는 없었을 게 아닌가.

앞으로도 과학은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리를, 진실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 그 넓고 넓은 우주에 우리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만 봐도 우리가 알아가야 할 과학의 길은 끝이 보이질 않는 아득한 길이다.

신자본주의는 ‘검증된 과학’이라는 주장의 ‘과학성’은 차치하고 인간을 중심에 놓고 연구해온 인문학적 정신에도 위배되는 발상이다. 솔직히 지금 미국인들은 그들이 쌓아올린 ‘부’만큼 행복한가. 그렇게 보이는가.

부자들이야 어느 나라에 가든 잘 살 수 있다. 더하여 유럽보다는 미국이 부자들이 살기에 더 좋은 조건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서든 부자는 소수이고 대다수는 가난하다.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의료보험혜택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해도 빌려 쓴 학자금 갚기에 삶이 쪼그라든다. 우리보다 정도가 더 심하다고 한다. 그나마 오바마가 다소 개선시켰지만 트럼프는 그걸 다시 원점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그런 미국이 그토록 부러운 이들은 아마도 이 나라의 부유층일 게다. 우리도 그들처럼 되길 갈망할 만하다.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자꾸 복지혜택 늘리면 나라가 망한다고 겁을 주면서.

그들의 그런 ‘정치적 입장’은 또 그것대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인 동시에 자본주의 국가이니까.

그렇다 해도 거기에 ‘과학’을 들러리 세우지는 말자. 그 무엇보다 의심과 탐구를 통해 ‘변화’를 가져올 때 비로소 ‘과학’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니까. 아무데나 ‘과학’을 붙여놓고 ‘맹신’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과학의 발전과 기술적 혁신은 어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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