總選을 포기하라
總選을 포기하라
  • 홍승희
  • 승인 2003.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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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하는 초보자들에게 이르는 금언 가운데 하나가 ‘산에서 길을 잃으면 원점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길을 찾겠다고 헤매다보면 점차 길에서 멀어지기 쉬워 그만큼 조난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지금 금융정책을 포함한 경제정책 전반이 마치 길을 잃고 산 속을 헤매는 모양새다. 머뭇거리다 내놓은 정책이 이미 失機해 효과도 없이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하고 원인을 잘못 짚은 채 현상 진화에 급급해 부적절한 정책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재경부 내에서도 금리정책 실기를 지적하는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또한 금리인하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負의 효과만 예상된다는 비판이 많았다. 카드채 사태만 해도 시장충격을 줄이겠다고 대책을 내놨지만 애시당초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할만한 내용이 못됐고 결과는 미봉에 부실 카드사 수명연장만 시킨 꼴이 됐다. 일단 숨쉬는 한 영업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부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금리인하는 시점을 참으로 잘못 잡았다. 경기부진의 상태가 부동산 경기까지 풀이 죽어있는 정도일 때라면 금리인하가 경기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게 확실하다. 하지만 이번 금리인하 시점은 부동산 투기 조짐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였다. 금리인하는 이미 불이 붙기 시작한 투기 시장에 기름을 뿌린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금리인하의 부작용을 우려해 강도높은 부동산 투기 억제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한쪽을 막으면 다른 곳에서 튀어나오는 전자오락기의 두더지게임처럼 부동산으로 몰려드는 자금을 막을 수가 없어 보인다.

현재의 경기부진은 시중에 자금이 없어서가 아니다. 단지 기업이 투자의욕을 보이지 않아 생산활동이 위축된 것일 뿐이다. 대기업들은 낮아진 금리로 생산활동을 재개할 의욕을 보이기는 커녕 저금리 대출받아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린다는 소문조차 들린다.

게다가 가계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자금 공급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가계부실은 시중 자금의 절대규모가 작아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富의 계층적 쏠림현상이 너무 심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공금융에 대한 심각한 모럴 헤저드도 가계부채를 더 심각한 상황으로 만든 원인 가운데 하나다.

제도금융기관의 금리는 이미 사실상의 마이너스 금리다. 마이너스 금리시대에 접어들어 인플레 헤지를 추구하는 저축자금들까지 투기자금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금리를 더 내리면서 투기를 막겠다는 생각은 상식적인 발상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정책 하나로 경기를 반전시킬 수는 없다. 자칫 정책의 남용으로 더 이상 쓸 수 있는 정책수단마저 없애버리는 愚를 범하기 십상이다. 금융이 경기와 무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경기부양의 토대가 다져지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정책만으로 경기를 부양하려 하다가는 국가경제의 근간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정책당국은 다소 고통이 따르더라도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단기적 성과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데 주력할 일이다.

지금 경기를 무리하게 활성화시키려 해도 어차피 내년 총선전까지 생산적 투자가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총선 이후 개혁정책의 후퇴를 보며 투자시기를 저울질하려는 자본의 시간벌기를 두 눈 멀쩡히 뜨고 보면서 거기다 돈이든 정책이든 쏟아붓는 것은 낭비다. 부어봐야 그냥 흘러내릴 뿐 스며들지 않는다. 그렇게 흘러내린 물은 오히려 투기시장으로 몰려갈 위험성만 커진다.

총선전에 온갖 정책수단을 동원해 경기를 살려보려다 보면 각종 무리수가 따르게 되고 원하는 결과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현 경제팀은 인정해야 한다. 차라리 보다 더 원칙에 충실해 총선 전에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일, 시장에 적절한 경쟁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총선을 포기하라. 포기가 빠를수록 소탐대실을 면할 것이다. 1년이나 남은 총선시기까지 내내 발등의 불끄듯 경기상황에 끌려 다니다가는 수습할 수 없는 국면을 초래할 가능성만 커져간다.

지금 시점에서 단기적 효과를 거둘 적절한 금융정책 수단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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