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한마디의 무게
한국은행 한마디의 무게
  • 홍승희
  • 승인 2005.02.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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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외화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달러 약세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국의 중앙은행 보고서가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은행의 이 한마디에 비록 일시적이었을망정 국내 증시가 지수 1,000선 문턱에서 한차례 크게 출렁거렸고 나아가 미국이 재정적자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외신까지 등장했다.

한국은행 쇼크로 불리는 이 보고서의 제기 내용으로 국내 증시가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쌍둥이 적자에도 태연하기만 하던 미국이 재정안정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는 미국내에서의 분석은 오히려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이 되고 있다.

하루 20억 달러를 차입해야 유지된다는 미국의 부실한 재정구조가 초래한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하는 새에 한국 경제의 영향력이 이만큼 커진 것인가 싶어 새삼 놀라운 것이다.

물론 오비이락 격으로 하필 한은 보고서가 나온 다음날 대만이 달러 대량매입 주문을 취소하는 바람에 일파만파 파장이 번져간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한국 스스로에게도 현재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2천억 이상의 달러가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의외로 만만찮음을 경험하게 만든 계기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만약 한은 보고서와 같은 언급을 6,000억 달러 이상의 외화보유고를 가진 중국이 했다면 그 파장은 어땠을까.

이번 한은쇼크는 세계금융시장에서 각국 정부의 외화 보유 규모가 상당히 강력한 무기임을 재삼 각인시켜준 사건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경제지식이 없는 서민대중에게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외화 보유국인 일본에 미국의 정책이 여러모로 기우는 것도 새삼스러울 게 없음을 납득시켜 준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달러에만 지나치게 편중된 외화 보유의 현상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한은의 외화 보유 규모 자체가 과도하냐를 두고 논란을 벌여온 이들이 좀 머쓱해질 법도 하다.

IMF야 한국이 그런 무기를 갖는 것에 딴지를 걸 수 있지만 국내에서 조차 그에 맞장구친 것은 어찌됐든 잘 한 일이 못됨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달러로만 편중된 외화 보유 실태는 지금 외환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근본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앞으로도 지속적인 달러 약세화가 불가피할 것인데 달러가격 폭락사태가 발생해도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외화를 섣불리 팔자고 나설 수 없음도 이번 한은쇼크로 보다 명확히 드러났다.

전세계에서 우리보다 달러 보유액이 더 많은 나라는 하필 일본, 중국, 대만 3개국이다.

그러니 여러 면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그들 나라의 외환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필요도 더 커졌다.

이번 한은쇼크도 결국 대만의 매수 취소로 인해 촉발된 것이었지만 단일통화 유로를 지키기 위한 유럽의 보조 맞추기를 아시아 4개국 간에 기대하기는 만만찮기 때문에 결국 상호 감시하듯 서로의 움직임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포스트 달러시대에 대한 대비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예상됐던 것이지만 IMF의 악몽 탓에 우리는 여전히 달러에 목매달았고, 또 한미관계의 다중적 긴밀성 때문에라도 달러를 얼마간은 계속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도 하다.

게다가 수출호황이 곧 경기활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한국의 경제구조에서 수출실적이 늘어갈수록 달러 유입은 더 늘 것이고 국내 경기가 살아나면 그럴수록 외국인 투자 자금의 국내 유입도 늘어날 것이니 이래저래 달러 처리가 고민거리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보유 외화를 다변화하겠다지만 그게 그리 간단치만도 않아 보인다는데 한국은행도 고민하고 있을 성 싶다.

이번 한은쇼크를 계기로 앞으로 한은의 행동은 외신의 민감한 관찰대상이 됐을 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민간 베이스의 무역거래 대금 다변화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또한 외국인 투자 유치도 달러 베이스로만 고집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선 인풋에서 다변화가 이루어져야 시장의 부담을 줄이며 보유 외화의 다변화를 진행시켜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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