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정책의 후유증, 그 1
조급한 정책의 후유증, 그 1
  • 홍승희
  • 승인 2005.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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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한국은 영원히 인구 1억명을 넘어서보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한 때 수출위주의 경제구조를 내수시장과 균형맞춘 성장구조로 전환하려면 적어도 자국 인구 1억명 이상은 돼야 한다던 주장이 있었는데 지금 그런 주장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그 주장을 따르자면 한국은 영원히 수출 위주의 외발 자전거를 타지 않는 한 성장 후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매우 불길한 예언이 되는 셈이다.
한국의 인구가 1억명 미만에서 감소세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은 동시에 세계 최고속도의 고령사회 진입이라는 기록을 동반하고 있다. 그만큼 경제활동 가능인구의 감소, 공적부조의 최소부담 증가, 불가피한 성장지체의 어두운 전망을 낳고 있다.
지금의 빠른 인구 구조 변화는 60년대 이후 강제되던 강력한 출산억제정책의 후유증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먹는 입 하나 덜자는 식의 인구증가 억제정책은 비록 그 필요성이 충분히 있었다 해도 강압적이다시피 진행함으로써 문제를 크게 만든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초단기간에 정책목표에 도달하고 이제 그 정도를 넘어 인구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크, 지나쳐왔군 하는 식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정책방향을 선회하게 됐으니 후유증이 없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일반적인 운전의 상식은 정책 운용에도 적용될 터이다. 가급적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운전이 바람직하고 미리 멀리보고 서서히 감속하며, 방향선회를 해야 할 지점에 이르기 전에 전방의 여러 변수들을 사전 대비하며, 불쑥 옆에서 튀어들어올 위험까지도 염두에 두는 방어운전은 안전운전을 위한 필수적 자세다. 정책 운용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최단기간에 빈곤국에서 탈피해 급성장한 한국 경제에 그런 안전운전을 기대하기는 애당초 무리였던 듯하다. 지난 40여년간 한국 경제는 초보운전자의 서툰 운행처럼 불안하기만 한 운전실습의 과정을 거쳤다. 이 즈음엔 그래도 많은 연구기관`인력들이 장`단기 전망을 내놓고, 정책은 또 그런 전망들을 웬만큼 수렴하며 밑그림 그리기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요즘은 사공이 너무 많아 배가 산으로 오르는 것은 아닌가 싶을만큼 주장들이 여러 이익집단들을 대변하며 다양하게 쏟아져 혼란스러운 지경이 된 까닭에 정책이 일관성을 잃는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도 이쪽 저쪽 주장을 무원칙하게 믹싱해 이상야릇한 정책이 나오는 경우마저 나타난다. 그러다보니 조수석에 앉은 배우자의 잔소리에 신경쓰다 덜컹 급브레이크 밟듯 정신 산란한 운전으로 가슴 철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즈음 진실로 걱정스러운 것은 모든 경제 주체들이 스스로 조급증시대에 교육되고 훈련되어 자신들도 모르게 그 성급한 시대적 특성에 길들여졌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멀리 내다보고 객관적 시각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전문가들이나 언론들도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주문에 반하는 비판을 주저없이 늘어놓곤 하는 모습을 보면 조급증의 중독이 참으로 심각한게 아닌가 싶다.
물론 우리만 서두르는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니 마냥 느긋한 자세로만 지낼 수는 없다. 어차피 현대 문명 자체가 갈수록 가속도를 붙여가며 빠르게, 더 빠르게를 외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2백년간 꾸준히 성장하며 여러 사회적 갈등을 조율하는 훈련을 거친 사회는 우수한 마라토너처럼 스스로의 속도에 서서히 탄력을 붙여가는 것이기에 호흡조절, 체력안배를 해가며 스피드를 높이는 것이라면 1백50년이나 늦게 스타트해 불과 40여년만에 선두그룹에 엇비슷하게 접근한 우리는 지금 숨이 가쁘다. 그러니 속도를 마냥 늦출수는 없지만 가속도는 조금 줄여가며 일단 호흡조절을 하지 않으면, 체력 회복을 병행하지 않으면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위험도 있다.
그런데 그 가속도를 줄이는 것에 우리 사회는 끔찍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 사회적 체력안배를 고려해야 하는데 다시는 이 만큼의 자리도 지키지 못할까 싶어서 영 두렵기만 하다. 그래서 여전히 분배없는 고속성장을 고집하는 이들이 목청을 한껏 높이는 것이리라. 외발 자전거의 가속도는 무한대로 높일 수 있는 게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조급증의 독이 너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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